음현리는 내촌면의 6개 법정리 중 하나이다. 음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음고개, 엄고개 또는 음현, 엄현, 암현이라 하였다.
1912년 행정 구역은 포천군 내동면 음현리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음현리 일부를 내촌면 내리에 떼어주고 내동면 내리 일부와 팔야리 전체를 병합하여 음현리라 하고 내촌면에 편입하였다.
음현리는 내촌면의 남동부에 위치하며 주금산(812.7m)의 남서 자락에 해당한다. 동쪽과 서쪽의 산지 사이를 흐르는 음현천 주변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내촌 중학교가 위치한 중북부 지역으로 경작지가 펼쳐져 있다.
국도 47호선이 음현리의 남북 방향으로 세로로 지난다. 자연 마을로 둔터·뒷말·마야위·바깥말·안양절·아래여덟배미·여덟배미·위여덟배미·중간여덟배미·큰둑바위 등이 있다.
음현 4리는 음현리가 3 개리로 분리된 후 89년도에 음현 1리에서 뒤늦게 분리됐다. 옛 지명은 둔터로 군사주둔지가 있어서 유래했으며 마을앞 은고개라는 지명 음고 개, 엄고개에서 변형된 지명이며 음현리 지명이 음현 4리에서 유래됐다고 할 수 있다. 전해지는 말로는 이태조가 함흥길을 왕래하다가 문득 고개 이름을 질의한데서 엄현(奄: 문득 엄)이라는 설도 있다.
또한 음현 4리는 6.25 전쟁 상흔을 안고 있는 동네로 전쟁의 한 복판에 있어 마을 전체가 잿더미가 될 정도의 격전지였고 인명피해도 상당해 반공의식이 강한 편이다.
음현 4리는 전주이씨 집성촌이었으며 인터뷰에 오신 네분의 남성회원중에 회장님을 비롯해 세분이 강자 돌림의 같은 항렬(行列)의 이씨 후손으로 많을 때는 33호의 가구중 27호를 차지할 정도로 이씨 집안 집적도가 높았다. 현재까지도 전주이씨의 집성촌답게 마을 입구에는 제실이 위치해 있고 매년 시월 첫째 주 일요일 전국의 후손들이 모여 제를 지낸다.
경로당 회원은 총22명으로 이강준 회장과 김길웅 총무를 비롯해 남성회원 7명과 여성회원 15명으로 구성됐으며 3년 사이에 12명의 회원이 작고했고 94세의 사명희 회원이 최고령으로 마을 전체 평균 연령이 높은 편이다.
현재 음현 4리는 마을 형태가 상당히 훼손됐다고 볼수 있다. 33세대 정도가 거주하던 마을이 130여 세대로 늘었지만 공장 및 외지인의 유입으로 마을 전체가 예전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며 원주민 가구수는 20호 정도라고 했다.
음현 4리는 도심속의 마을이 아닌, 공장속의 마을이지만 효령대군의 자손임을 자랑스러워하며 , 마을 외형은 변했어도 심성은 예전 그대로의 촌노와 촌부가 사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사는 동네다. 몇 년전에 신축한 경로당이 비좁고, 마을 진입로등이 불편하지만 시골의 순수한 마음으로 순응하며 순서와 예를 존중하는 예스러운 마을이 음현 4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