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를 보고 우선 부제(副題)에 흥미에 이끌려 끝까지 탐독하는 매력을 느끼게 하였다. (논문 내용 생략)
화서학파의 세 기둥인 중암, 면암은 그들의 스승이자 학파의 거두인 화서의 사상을 실천하는데 사상적 결연은 물론 화서가 지어준 호(號) 답게 당시 학파가 크게 주목받을 실천운동을 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적은 지면을 통해 문외한(門外漢)인 필자가 어찌 중언부언 평설(評說)을 늘어놓겠는가?
제주도 유배시 한라산 등반기와 귀향에서 풀려나 귀향길에 쓴 시문과 포천에 담긴 암각에서도 면암은 중암을 비롯한 화서학파의 기본 사상을 함축성 있게 노래하고 있다.
중암이나 면암은 우리들의 고향인 포천을 대표하는 선비정신을 구현한 인물들이다. 화서학파의 첫째 기둥인 면암이 없었던들 당대 임금들이 임금다운 임금 노릇을 어찌 할 수 있었겠는가?
화서학파의 기둥들은 학자로서의 연구나 실천 철학과 의리에 앞서 내 고향 포천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아낀 학자들이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사상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포천에서 출생하고 포천이 고향인 이희용 박사에 의해 화서학파의 세 둥의 심설논쟁이 연구되었다는 점 또한 높이 평가할만하지 않은가? 이희용 박사는 어렸을 때 부모님께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으며 배운 ‘천자문’이나 ‘동몽선습’, ‘소학’이 오늘의 동양철학박사 학위를 받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다.
부모님의 향토사학자로서의 대성(大成)을 바라는 염원(念願)이 오늘의 이희용 박사의 학문적 밑걸음이 되지 않았다 생각되어 진다. 박사학위 논문은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이어지는 다음 논문을 통해 내 고향 포천을 대표하는 선비들의 학문적 연구 결과가 피력되어 포천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크게 기여할 것을 기대해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