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리는 영중면이 관할하는 6개 법정리 중 하나로 태봉국 당시 성이 있어서 성동이라 하였다. 큰 재[山] 아래 있어서 잣골, 잿골 또는, 백곡이라고도 하였다.
1912년 행정 구역은 영평군 군내면 성동리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성동리 일부를 양문리로 떼어 주고 군내면 수동리 전역과 읍내면 천변리 일부를 병합하여 성동리라 하고 포천군 영중면에 편입시켰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38선 이북 지역인 성동리 일부가 북한 치하에 들어갔다가 6·25 전쟁 때 실지(失地)를 회복하여 1954년 11월 17일 행정권이 이양되었다.
국도 43호선이 남북으로 지나며 성동리 중앙 부근에서 지방도 372호선과 접한다. 성동리에 위치한 자연 마을로 가신·가재미(가좌리)·너븐들(광평)·느릅정이(유정)·벌말·삼산(사미앞)·새장터(신장)·잣골·(잣대이)·파주골(파주동)·향교골 등이 있다.
성동리는 현재 5개 마을로 나뉘어 있으며 성동3리는 영평천을 경계로 삼산대교 건너 풍혈산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의 옛 지명은 삼산으로 풍혈산, 불무산, 관음산 세 개의 산봉우리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특히 풍혈산이 마을 뒤편에 자리하며 풍혈은 여름에도 늘 서늘한 바람이 불어 나오며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을 제공하므로 도시에서 전원주택지로도 인기가 높으며 삼산대교를 지나 풍혈산 기슭 암굴에 돌부처상이 있어 인근 주민들의 기도처로 활용되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농경지가 발달해 있다. 예전에는 밭이었지만 정치인 오치성의 노력으로 영평천 물을 활용한 양수장 시설로 논으로 바뀌어 고지대임에도 불구하고 논농사가 발달돼 있다.
또한 포천에 사과 농사가 본격적으로 도입된지 10년이 안되지만 성동3리에는 청농원이라는 40여년된 사과 농장이 있다.
특이한 점은 해방후 영평천을 경계로 소련군과 미군이 주둔할 정도로 최접경지였으며 성동3리가 중립지대로 지정되어 미군과 소련군의 완충지대 역할을 했으며 한때는 면사무소, 학교, 지서의 소재지로 큰 마을이었다.
경로당 회원은 51명으로 남성회원 23명, 여성회원 28명으로 구성돼 있고 안동 김씨의 비율이 높은 편이며 93세 손종수 옹이 90세된 할머니와 해로 할 정도로 물이 깨끗하고 공기가 좋았지만 양문공단의 대기오염과 폐수 문제로 최근에 고통을 안고 있다.
전반적으로 경로당 회원들의 평균 연령이 높은 편이며 남성 회원들의 체구가 큰편이다. 취임 5년차인 76세 김재한 회장과 73세의 김주동 총무의 무난한 경로당 관리가 경로당 곳곳에 눈에 띤다.
성동3리는 포천 영중면의 깊은 산골이지만 마치 김제 만경평야의 지평선 같은 마을이다. 찾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은근한 정이 넘치는, 산 좋고 물좋은 고장, 모든집 대문이 활짝 열려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성동3리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