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요동치는 시국(時局)을 보면서 걸림돌과 디딤돌이라는 말을 문득 떠올린다. 국가나 회사나 개인이 가는 길에는 항상 예상치 못했던 장애물(障碍物)이 나타게 마련이다. 갑자기 나타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우리는 그것을 걸림돌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 돌을 딛고 더 힘을 내서 힘차게 도약(跳躍)하면 반대로 우리는 그 장애물을 고마운 디딤돌이라 부른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부정적인 점만 보는 사람은 부정적인 세계에서 살아간다. 반대로 긍정(肯定)의 힘을 믿는 사람들은 가능성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불편함마저도 그것을 베스트로 만드는 능력을 발휘(發揮)해 국면을 전환시킨다.
긍정한다는 것은 가능성(可能性)을 보는 것이다. 아니 가능하게 이끌어가는 것이다. 안 되는 일도 되게 만드는 것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希望)을 보는 것이다. 아니 희망을 추구(追求)하는 것이다. 반면 부정은 부인(否認)하는 것이다. 해보지도 않고 외면하는 것이다.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매사 낙관(樂觀)만 해서는 안 된다. 밝게만 봐서는 안 된다.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봐야 한다. 절망(絶望) 속에서도 희망을 보라는 것이다. 절망 속에서도 가능성을 찾아내라는 것이다. 걸림돌을 디딤돌로 삼아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는 지혜(智慧)를 발휘하라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반전 스토리를 만들어보라는 말이다. 파국(破局)의 상황을 획기적 계기로 바꾸어 보라는 말이다. 네덜란드의 역사적인 튤립 버블을 생각해보라. 나라 전체를 위기로 몰아간 광기 어린 투기(投機)였다. 그러나 그 후 그들은 세계 최대의 화훼산업(花卉産業)을 일궈냈고 후손들은 그 덕분에 풍요로운 삶을 산다. 미국도 그렇다. 세계 제일의 강국이 되기 전 1929년 미국은 미증유의 대공황(大恐慌)을 경험한다. 1990년대 말엔 IT 관련 주가가 대폭락(大暴落)하는 닷컴버블을 겪는다. 그랬던 미국이 오늘날 어떻게 됐는가? 걸림돌을 디딤돌 삼아 세계무대에 우뚝 서는 반전 스토리를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모두들 사면초가(四面楚歌) 위기의 대한민국이라 한탄(恨歎)하고 있지 않은가? 2017년 정유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것인가 아니면 디딤돌 삼아 힘차게 뛰어오를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역사를 보라. 이순신 장군을 보라. “신에게는 아직 전선 12척이 남아 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면 막을 수 있습니다.” 1597년 음력 9월16일 명량해전(울돌목)에서 동서고금을 통해 전무후무한 바다의 대 혈전을 펼친다. 왜적은 133척, 조선은 겨우 13척, 게다가 대패한 뒤라 장졸들 사기는 엉망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는가? 기적적(奇蹟的)으로 대승을 거두지 않았는가?
이순신은 가난한 선비의 아들로 태어나 54년의 일생을 보내는 동안 온갖 고난을 겪었다. 그런 가운데 우리에게 참다운 인간의 길과 충효(忠孝) 정신을 보여주었다. 그는 애국애민(愛國愛民) 정신으로 일관한 민족사의 대표적 위인이다. 전쟁에 임해서는 필승의 신념과 비상한 전략전술로 백전백승(百戰百勝)한 불세출의 명장이었다. 부하들을 감싸주고 창의력을 길러주며 참다운 삶의 길을 제시해준 큰 스승이었다. 숱한 외침 속에 구국의 영웅도 많았지만 장군은 그야말로 으뜸가는 구세주(救世主)였다. 나라가 어지럽다. 국난에 버금가는 난국이다. 장군의 정신을 본받아 각자 최선을 다하자. 그것이 애국하는 길이다.
난국을 보면서 정유재란(丁酉再亂)을 다시 생각한다. 임진년에 시작했던 임진왜란(壬辰倭亂)에서 퇴패했던 일본군이 1597년 정유년에 다시 침략했다. 정유재란은 이듬해까지 이어져 이 땅에 큰 상흔(傷痕)을 남겼다. 임진왜란은 결국 이순신 장군의 순직과 함께 끝났고 일본은 당연히 패망했다. 걸림돌을 디딤돌 삼아 역사적인 대반전 드라마를 연출했던 이순신 장군!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면 막을 수 있습니다’ 장군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