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죽마고우(竹馬故友) 인 전 S국영기업체 조모 상무이사의 시신 기증 이야기를 들었다.
“나 교회 장로가 아닌가, 그래서 살아 있을 대 별로 착한 일, 좋은 일 한 것 없어서 죽어서 좋은 일을 하기로 했네….”
“무슨 좋은 일이기에 그리도 서론이 거창하신가?”
“나 큰일을 하기로 했네, 나 죽으면 내 죽은 시신을 의과대학 해부학 교실에 실험용이나 해부학 실습용으로 쓰라고 기증하기로 했어….”
말을 끝낸 조모 상무의 모습은 매우 의미심장해 보였던 생각이 난다.
사실은 내 고향 포천의 사후 시신 최초 기증자로 예약되었던 인물은 시계포를 운영하는 포천 최초의 시계수리기술사 자격증 조지자 조씨였다.
일제시대 경성제국대학교 의과대학(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에서는 조씨의 크고 우람한 체격의 신체구조를 연구하고자 의과대학 해부학 교실에서 사후 시신을 기증받기로 하고 젊고 착한 조씨에게 거금의 시신 사용료를 사전(死前) 지급하였다.
그러나 신체가 우람한 거인(巨人)이고 체격이 크니까 얼마 살지 못하고 일찍 사망할 것이라는 경성제국대학교 의과대학 의학박사들의 견해와는 달리 건강하고 선량한 시민으로 장수하였으며, 출산을 못하고 후손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과는 달리 예쁘고 공부 잘하는 자녀를 두고 행복하게 읍내 장거리에서 살았다.
더욱 놀랍고 고마운 일은 사전에 받은 시신 기증료로 상경하여 시계 기술학교에서 시계 수리 기술을 배우고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하였으며, 다른 시계포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시계수리기술이 뛰었으며 영업에도 능하였다.
새장터 쌍둥이 시계포나 경찰서 앞 시계포 등도 모두 조씨네 시계포와의 경쟁에서 밀려 다른 지역으로 점포를 옮겨야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거인 조씨는 목소리가 몹시 부드럽고 마음씨가 착하였으며 예절바르고 인사성이 밝아 읍내는 물론 포천 사람들 외 타지인들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생각이 난다.
8·15해방이 되고 일본제국이 경영하던 경성 의과대학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소식을 알 길이 없으나 기형(奇形)이나 거인이 아닌 정상인인 조씨였으며, 착하고 예절바른 조씨는 그 후, 사망 시 시신이 기증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조씨는 포천 최초의 정식 시계수리기술사였으며 포천의 최초 사후 시신기증자로 기록되어야 할 인물이었다.
얼마 전, 포천병원 장례식장에 갔더니 포천에도 사후 시신기증자가 꽤나 많이 증가하였다는 말을 관계자로부터 들으니 금석지감(今昔之感)이 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