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原典) : 논어(論語) 제5편 공야장(公冶長) 15장에 [子貢이 問曰하되 孔文子를 何以謂之文也잇고? 子曰 敏而好學하며 不恥下問이라 是而謂之文也니라 - 자공이 공자님에게 물었다. 공문자를 왜 문(文)이라 부르게 되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민첩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여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호(諡號)를 문이라 붙인 것이다] 중국 춘추시대 (BC 770-221) 때 위(衛)나라 대부로 있는 공어(孔圄)가 죽자 제후가 시호(諡號)를 공문자(孔文子)라고 내리자, 공어의 살았을 때 행실은 욕심도 많았으며, 충성심도 적었고 더구나 유부녀를 성추행한 경력이 있는 것까지도 잘 아는 공자님의 수제자 자공이 문(文)자가 들어가는 시호가 내려진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여 공자님에게 묻고 답한 내용이다. 공어는 살아 있을 때 영리하고 민첩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여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文)자가 들어간 시호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공자께서 진(陳)나라를 지나갈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공자는 전에 어떤 사람에게 진기한 구슬을 얻었는데, 이 구슬안의 구멍이 아홉 구비나 되었다. 그는 이것을 실로 꿰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성공할 수 없었다. 문득 바느질을 하는 아낙네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꿸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가까이 있던 뽕밭에서 뽕잎을 따고 있던 아낙네에게 그 방법을 물었다. 공자의 이야기를 듣고 난 그 아낙은 이렇게 말했다. “개미허리에 실을 매어 구슬 구멍에 밀어 넣고, 나오는 구멍 쪽에 꿀을 발라 놓으시오” 알려준 대로 하여 공자는 구슬을 다 꿰어 광채 있게 사용했다고 한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결코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로, 아무리 지위가 낮거나 못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을 수 있으니, 자신이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은 신분이나 지위가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공자천주 [孔子穿珠]라는 말이 생겨났다.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함께 길을 가는 세 사람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같이 할 때에는 선악간(善惡間)에 반드시 스승으로서 배울 만한 사람이 있는 법이라 하였다.
우리 속담에도 농사짓는 일은 머슴에게 묻고 베 짜는 일은 게집 종에게 물으라는 말도 있다. 주변에는 스승 아닌 사람이 없다.
참고한 자료 : [논어(論語) 제5편]. [서강대자전-불치하문(不恥下問)]. [이야기 고사성어] 장기근 박사 감수 명문당 출판 책 중에서-불치하문(不恥下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