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黃玹 1855~1910년)은 조선 말기의 학자로 우국지사였다. 자는 운경(雲卿) 호는 매천(梅泉) 본관은 장수(長水) 전남 광양 출신이다. 시문(詩文)에 능하여 조선조 고종 22년(1885년) 생원시(生員試)에 장원하였으나 시국의 혼란함을 개탄, 향리(鄕里)에 은거(隱居)하였다.
융희 4년(1910년) 일제에 의해 한·일합방이 강요되자 국치(國恥)를 통분하여 절명시(絶命時) 4편을 남기고 음독 순국하였다. 이듬해 영·호남 선비들의 성금으로 ‘매천집(梅泉集)’이 출간되고 님의 대표작 ‘매천야록(梅泉野錄)’을 남겼다.
한말풍운사(韓末風雲史)인 ‘매천야록’은 조국 대한민국이 독립되고 8·15와 6·25를 겪은 뒤 1955년 대한민국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총서 제1권으로 발간되어 우리나라 최근세사의 귀중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그밖에 저서에 ‘동비기략(東非紀略)’이 있다.
1962년 조국은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하였다. ‘매천야록’은 요즈음 여러 종류의 책으로 발간되어 독서가들이나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글자 그대로 수필체의 야록으로 본 것, 들은 것, 신문기사 등을 ‘매천’특유의 필치로 써내려가 수칠가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내 고향 포천과 관계되는 부분은 생가(生家)를 포천에 둔 ‘면암’이 조직한 독립군(의병) 이야기가 1장에 나온다. 면암이 조직한 의병들은 전투를 할 때, ‘갓 쓰고 도포입고 싸웠다’는 대목이 나온다. 아무리 적을 무찌르는 전투라도 양반의 평상복장인 상투찌고 갓쓰고 도포입고 의관을 정제하고 전투에 입했다고 한다.
당시 의병들이 정규군도 무기가 있을 수 있었겠는가? 무기래야 농기구(낫, 도리깨, 쇠스랑, 괭이)가 아이었겠는가?
동학군이야 관군(官軍)과 싸워 뺏은 무기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일본 의병들에게 정규군다운 모습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애국심과 구국의 일념으로 싸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