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어제이고, 지금 눈 깜짝할 사이의 매우 짧은 이 순간(瞬間)과 시간의 흐름 위의 어느 한 순간의 시점(時點)을 현재(現在)라 한다. 지난날 그 무언가에 집착하여 가슴에 품었던 감정이나 생각을 딱 끊지 못해 미련(未練)에 연연하다보면 미래(未來)에 대한 큰 꿈을 꾸는 시간은 적어진다. 옛 어르신께서 “큰 꿈을 많이 꾸어라”는 말씀이 새삼 생각나는 현재의 사회분위기이다.
이에 어떤 생각이나 사실 따위가 그러하거나 옳다고 인정한다는 긍정적(肯定的)인 생각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기에 이르는「삶」에서 어떤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좇아서 구하도록 추구(追求)함으로서 보다나은 내일만이 아닌 앞으로의 희망을 이루기 위해 그 무언가를 헤아리고 판단하고 궁리하는 사고(思考)의 자세로 모든 열정이 나의 존재를 존중(尊重)토록 하면서 현재 임(任)하고 있는 모든 일에는 혼신(渾身)의 정신으로 진력(盡力)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즐거운「삶」을 추구하기 위해 사회생활 과정에서 형성된 사회적 관념으로부터 사회구성원들이 각각의 지위나 위치에 따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품격과 성질을 아울러 이르는 말인 품성(品性)과 교양(敎養)으로 품위(品位)를 갖추어야 한다. 또한 다른 것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순수성(純粹性)을 흔히 겪어 보지 않은 대상에게 우러르는 마음으로 그리워하면서 간절한 생각을 통해 동경(憧憬)을 한다. 사람들에게 복지(福祉)나 행복의 정도를 말하는「삶의 질, Quality of Life」만큼 그 범위가 광범위(廣範圍)하고 여러 가지 뜻을 지닌 다의적(多義的) 개념도 드믈 것이다. 그래서 자고로「삶」이라는 말 자체가 사람에 따라 각양각색(各樣各色)으로 풀이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품위 있는「삶」을 긍정적으로 즐기는 이는 흔치않다.
소크라테스(Socrates 고대그리스, 철학자 470?-399B.C.)는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말하였지만 “바로 산다는 것이 무엇이냐”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알베르트 슈바이처(Schweitzer· Albert 독일, 의사․신학자․철학자․오르간연주자,1875~1956)는 “나의 생활과 사상”에서 “나의「삶」에는 두 가지 체험이 그늘지고 있다. 하나는 이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와 고뇌가 넘쳐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류의 정신적 퇴폐기에 내가 살게 되었다는 사실”이라고 고백하였다. 아마도「삶의 價値」또는「삶의 質」에 대한 논쟁은 영원히 풀릴 수 없는 문제가 아닐까 한다. 이에 품위 있는「삶」을 추구하기에는 경제적인 여유에 동요되지 않으며 많고 넉넉한 재산인 부(富)를 과시하는 일없이 시종 성실하고 검소한 태도로「삶」의 품위를 긍정적으로 유지하는 이가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사람이 잘산다는 것은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편리한 것만이 아니다.「삶의 質」을 높이기 위해 더불어 사는 우리 모두가 정신적인 여유를 갖고 서로가 서로를 위하면서 화목하게 행복을 느끼면서「삶」을 즐기는 일이다. 비록 부족하고 불편스럽더라도 나누어 갖고 서로를 위하는데서 마음이 그득한 만족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긍정적인「삶의 質」을 높이는 길이다.
지난날 우리가 빈곤(貧困)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했다면 이제는 선진국의 문턱에서 다시 한 번 더 반성하고 새롭게 슬기로운「삶의 質」을 추구하면서 가슴속 깊은 마음을 아낌없는 말(言)로 격려와 덕담을 통해 서로 소통을 해야 한다. 또한 나에게 주어진 부(富)는 “이웃을 위하여 맡겨진 것이다.”라는 생각과 행동으로 서로 나누면서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자기를 낮추는 태도인 겸손(謙遜)을 인지(認知)한다면 모자람이 없이 마음에 흡족해 하는 만족(滿足)을 우리 모두는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사회분위기에서 사물의 이치를 바르게 판단하고 일을 잘 처리해 내는 재능(才能)인 ‘슬기’가 필요한 시기일수록 긍정적인「삶」을 추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