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典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고사(故事)이다. 춘추좌씨전은 공자(孔子)께서 편찬한 것으로 전해지는 역사서인 춘추(春秋)의 대표적인 주석(註釋)서 중 하나로, 기원전 700년경부터 약 250년간의 역사가 쓰여 있다. 또 다른 명칭으로는 좌전(左傳), 좌씨전(左氏傳), 좌씨춘추(左氏春秋)라고도 한다.
진(晉)나라에 대부(大夫)로 있는, 위무(魏武)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에게는 젊고 절세미인인 첩(妾)이 한 명 있었다. 어느 날 위무대부가 병으로 몸져눕게 되었다. 아직 제정신일 때 그는 아들 위과(魏顆)에게 일러 말했다. "내가 죽으면 이 첩을 다른 대부에게 개가(改嫁)를 시켜라." 하더니, 그 뒤 병이 심하여 죽게 되거늘 또 말하되 "내가 죽으면 저 여인(女人)은 순장(殉葬)을 시켜라."고 유언(遺言)을 했다.
위과는 아버지의 상반된 유언 중에 무엇을 따를지 고민하다가 아버지가 정신이 온전했을 때 남긴 유언을 따르기로 하고 아버지의 후처를 순장시키지 않고 친정으로 돌려보기로 하였으나, 유언을 같이 들은 동생 위명(魏螟)은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 효력이 있는 것이니 순장을 하는 것이 효도라고 주장을 하였다. 형 위과는 아버지가 맑은 정신으로 하신 말씀이 효력이 있는 것이니 순장을 하면 유언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하여 아버지의 장례를 모신 후에 서모를 명망 높은 재상가에 측실로 보내드리었다.
후에 진(秦)나라 군대가 쳐들어오자 위과는 전쟁터에 나가 싸웠다. 그러던 중 두회(杜回)라는 장수와 맞서게 되었는데 용맹하고 무시무시해서 진(晉)나라 군사들이 감히 맞서지를 못했다. 그러나 두회가 탄 말이 갑자기 그만 고꾸라져 두회는 떨어졌고 위과는 손쉽게 두회를 사로잡아 큰 공을 세우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두회가 고꾸라진 자리를 살펴보자 풀들이 매여져 있었다.그날 밤 위과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났는데, 그는 아버지 후처의 친정 아버지였다. 친정아버지는 위과에게 내 딸을 재상가에 출가시킨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 은혜를 갚기 위해 길가에 있는 끌량이라는 질긴 풀을 엮어 두회가 지나갈 때 말다리가 걸려 넘어지게 했다고 한 것이다.흔히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죽어서라도 갚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비슷한 말로는 백골난망, 각골난망 등이 있다. 크던 작던 우리는 이웃과 섞여 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항상 은혜를 입고 산다. 그 중에도 지중한 것이 우리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시켜주고 교육으로 심성을 순화시켜주는 관청이 있는 것이 첫째요, 다음은 심고 가꾸어 생산하는 농민이 있음이요, 셋째는 우리의 생필품을 적절히 생산하여 줌이요, 넷째는 필요할 때 적소에 공급하여 주는 상인이 있어 불편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은혜 아닌 것이 없다. 은혜를 알아 은혜를 갚는다는 지은보은(知恩報恩)의 생활이 우리 사회를 밝은 사회로 만든다.
참고한 자료 : [서강대자전-결초보은(結草報恩)]. [이야기 고사성어] 장기근 박사 감수 명문당 출판 책 중에서-결초보은(結草報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