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성현(聖賢)들의 가르침이 더욱 간절하게 다가온다. 퇴계 선생의 성학십도(聖學十圖) 제6도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에 수오지심(羞惡之心)이란 대목이 있다. 심통성정이란 마음이 이성과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이고 수오는 부끄러워하고 미워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옳지 못한 언행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이고 남의 옳지 못한 행위를 미워한다는 것이다. 또 중국 청대의 문인 왕지부(王之鈇)의 글 언행휘찬(言行彙纂)에는 수오탄비(羞惡歎悲)란 말이 나온다. 수오탄비란 인생에 부끄럽고 미워하고 탄식하며 슬퍼해야 할 네 가지 일을 이르는 말인데 그 글은 다음과 같다.
“가난은 부끄러울 것이 없다. 부끄러운 것은 가난하면서도 뜻이 없는 것이다. 천함은 미워할 만한 것이 못된다. 미워할 만한 것은 천하면서도 무능한 것이다. 늙은 것은 탄식할 일이 아니다. 탄식할 일은 늙어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다. 죽는 것이야 슬퍼할 것이 못된다. 슬퍼할 것은 죽은 뒤에 아무 일컬음이 없는 것이다.(貧不足羞, 可羞是貧而無志; 賤不足惡, 可惡是賤而無能; 老不足歎, 可歎是老而無恥; 死不足悲, 可悲是死而無稱.)” 부끄러워하고 미워할 것은 빈천이 아니라 기가 꺾여 제풀에 허물어지는 것이다. 탄식하고 슬퍼할 일은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줄 모르고 큰소리치다가 죽자마자 잊혀지는 일이다.
일반 동물은 부끄러운 것을 모른다. 사람만이 유일하게 부끄러운 것을 안다. 낯빛이 붉어지는 것을 안다. 일반 동물에는 없는 이성(理性)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수오지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양심(良心)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양심을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다. 일반 동물들은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는다. 사람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배가 불러도 사냥을 한다. 거기서 업(業)을 짓는 것이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탐욕(貪慾)을 버려야 한다. 탐욕은 한이 없다. 그래서 태산을 다 삼켜도 만족할 줄 모른다고 부처님께서 탄(歎)했다.
사후(死後)를 생각해야 한다. 사후의 평판(評判)을 생각해야 한다. ‘살아서는 뜻을 빼앗을 수가 없고, 죽어서는 이름을 빼앗을 수가 없다(生則不可奪志, 死則不可奪名)’고 예기(禮記)에서 말한다. 남이 뺏지 못할 뜻과 이름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해야지, 남이 안 알아주는 것을 탄식하지 말라는 얘기다. 공직자(公職者)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정치(政治)한다는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선비 절개 가난해서 굳세어지고, 고인(高人)의 뜻 병중에 자라나누나(貧堅志士節, 病長高人情).’ 가난과 질병은 뜻 높은 선비의 정신마저 꺾지 못한다는 말이다. 위정자(爲政者)는 청빈(淸貧)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위정자는 사익(私益)보다 먼저 나라를 생각해야 한다. 망징(亡徵)편에서 한비자는 말한다. 나라가 망하려는 47개의 징조(徵兆)를 예시하면서 여러 개가 켜켜이 쌓이면 나라가 망한다고 경고했다. 그 가운데 네 가지만 추린다. 우선 ‘임금이 날씨나 시간 따위의 길흉에 마음을 쓰고 귀신에 혹하여 점쟁이 말을 믿으면 그 나라는 망한다.’ ‘임금이 신하들의 의견을 들을 때 많은 벼슬아치의 말을 증거로 참고하여 알아보지도 않고 오직 한 사람만을 밖으로 내보내 정보를 얻는 창구로 삼는다면 그 나라는 망한다.’ ‘소국인데도 대국에 대해 겸손하지 않고, 무력하면서 강대국을 경계하지 않고, 탐욕적으로 서투른 외교를 해도 그렇게 된다.’
‘나라 금고는 비어 있는데 대신들 창고는 가득하며, 생업에 전념하는 백성은 가난한데 유랑민은 외려 돈이 많고, 농사일을 하거나 전쟁이 나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자들은 천대받고 있는 반면, 대단치 않은 직업에 종사하는 자만이 부자가 되는 나라는 망한다.’ 곱씹을수록 소름이 돋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대형 사고가 터지기 전엔 반드시 그 전 단계의 징후(徵候)들이 선행된다고 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