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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이야기] 일하러 가세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6년 11월 18일
 
↑↑ 벽운 김창종 수필가
ⓒ (주)포천신문사 
포천감리교회는 일제강점기부터 있어온 내 고향 포천의 기독교감리회교회이다. 일제시에는 강원도 평창 출신의 고명균(高明均) 목사님이 담임목사로 계셨는데 조무한 장로님이 시무하고 계셨다. 고명균 목사님은 신도들이 기부 헌납한 논·밭을 가꾸며 낡은 양철지붕의 교회를 지키고 계셨다.

찬양대는 간다상이라고 하는 음악선생님이 가르치셨으며, 풍금을 매우 잘 연주하는 여 선생님이 우리말 찬송가를 잘 가르쳐주셨다. 전도사 남궁선생의 고은목소리, 청년회 찬양대의 합창 소리는 내 고향 장거리(신읍동) 사람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교회에서는 ‘동화대회’, ‘독창대회’, ‘성경 암송대회’도 하였으며, 크리스마스 연극은 아주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일제 공무원들이 연합군(미국) 항공기의 폭격을 피해 교회 건물을 빌려 쓸 때에도 교회 청소를 깨끗이 하고, 금연하는 것을 조건으로 주5일 사용케 하였던 엄격한 고명균 목사님 이었다. 또 포천군 내 말 더듬이나 농아를 모아서 치료 훈련을 시키기도 하였다.

8·15 해방이 되자 건국준비위원회에 참가하여 독립되는 1948년 5월 선거일까지 각 면 치안대와 임시 면장 그리고 도평의원선거의 중추적 역할을 하셨다.

해방이 되자 서울 돈암동 감리교회로 파송 받아 가시기까지 포천의 애국단체를 지도하고 청소년들을 지도하신 고명균 목사님이었는데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분인 정춘수 목사님께서 포천감리교회를 인계하셨다.

특히 잊지 못할 것은 매일 같이 새 찬송가 ‘일하러 가세’를 교회가 떠나갈 듯 불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민족지도자 이승만 박사, 김구 주석은 물론 독립운동가와 의사, 열사들의 독립운동업적을 가르치셨으며 사진을 교회 벽에 걸고 널리 신도들에게 공부하게 하셨다.

일하러 가세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느님 주신 동산
이 동산에 할 일 많아
누군가 대령(대답)을 할까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반도 강산에 일하러 가세


(2·3절 생략)

지금도 귀에 쟁쟁한 ‘일하러 가세’ 찬송가는 포천감리교회 신도들의 심금(心琴)을 울리고 눈물로 반기기에 충분하다. 또, 고명균 목사님은 포천의3다(抱川之三多)를 처음 피력하신 분이다. 즉 반다(班多→양반 많고), 석다(石多→돌 많고), 언다(言多→말 많고)의 고장이란 뜻이다.

그리고 노는 사람 없고, 부지런한 사람이 많은 고장이 된 것도 고 목사님이 ‘일하러 가세’ 찬송가를 포천 사랑의 마음으로 크게 부르게 하신 정신교육의 소산(所産)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벽운 김창종 / 수필가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6년 1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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