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자는 정리(情理)와 의리(義理)와 법리(法理)를 아우를 수 있는 지혜(智慧)를 발휘해야 한다. 법(法)은 초기 자형에서 물의 뜻인 수(水)와 해태의 뜻인 치(廌) 그리고 제거의 뜻인 거(去)로 구성된 글자로 ‘법’의 뜻으로 쓰였다. 고대 중국에서 송사( 訟事)가 있을 때 시비와 선악을 가릴 줄 안다는 해태[廌]를 데려와 악인(惡人)을 제거함으로써 공평(公平)하게 처리했다는 데서 그 의미를 찾는다. 이후 생략되어 현재의 자형으로 쓰인다. 규칙(規則)의 뜻은 파생되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형벌[刑也]이라 하였다. 법이라는 말에는 이처럼 규칙이란 뜻도 들어 있고 위반하면 처벌한다는 뜻도 숨어 있다.
법리는 법률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법에 내재하는 사리(事理)를 뜻하는 것으로 법적인 논리를 말하는 것이다. 사리란 일의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리란 인정(人情)과 도리(道理)를 말하는 것이다. 인정은 사람이 본디 지니고 있는 온갖 감정(感情)이다. 남을 생각하고 도와주는 따뜻한 마음씨다. 도리는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길을 말하는 것이다. 의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도리이다. 남과 사귈 때 지켜야 할 도리이다. 법은 누구나 꼭 지켜야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다. 그래서 법불아귀(法不阿貴)라 하는 것이다. 법은 귀한 자라 해서 아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곡학아세(曲學阿世)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아전인수(我田引水)식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뛰어난 장인은 눈대중으로도 먹줄을 사용한 것처럼 맞출 수 있지만 반드시 자와 컴퍼스로 기준을 삼는다. 지혜가 탁월한 사람은 민첩하게 일을 처리해도 사리에 들어맞지만 반드시 선왕의 법도를 귀감으로 삼는다(巧匠目意中繩, 然必先以規矩爲度: 上智捷擧中事, 必以先王之法爲比).” 자신의 능력이나 지식에 자만하지 말고 법에 따라 다스릴 것을 강조한 말이다. 수많은 군주들이 몰락한 원인은 법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지식과 자의적(恣意的) 판단에 따라 임의적(任意的)인 잣대를 들이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비의 시각이다.
“법을 받드는 사람이 강하면 나라가 강해질 것이고 법을 받드는 자가 약하면 그 나라는 약해질 것이다.(奉法者强, 則國强, 奉法者弱, 則國弱)” 강국이 되느냐 약소국이 되느냐 하는 것은 법에 대한 군주의 태도에 달려 있음을 말한 것이다. 군주는 정리와 정실(情實)에 휘둘리지 않고 엄격한 잣대로 법치를 해야 한다. 법과 공정한 인사 지침에 따라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의 평판에 근거해 임용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평판이란 저마다의 이해관계 속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이 담합하여 군주를 기만하고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요즘 시국(時局)을 보면 기원 전 3세기 중국 진나라의 환관 노애를 비롯해 100년 전 제정러시아의 라스푸틴과 조선시대의 정난정과 진령군 같은 이들이 떠오른다. 노애는 거짓으로 궁형을 받고 환관으로 궁에 들어가 진시황의 어머니인 태후 조희의 내연남이 됐다. 이후 장신후라는 봉호에 봉지(封地)까지 받고 통제 불능의 권세를 누리며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요승 라스푸틴은 황태자의 혈우병을 신비주의적 최면 요법으로 치유한 것을 계기로 권세를 얻은 뒤 국정 농단(壟斷)과 축재를 일삼았다. 물론 이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순식만변(瞬息萬變)이라 했다. 눈을 한번 깜짝이고 숨을 한번 쉬는 사이에 만 가지가 변한다는 뜻이다. 세상은 이처럼 빨리 변한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한번 서운하면 모든 은혜를 잊기도 하고 따스한 한마디로 서운함을 잊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빨리 변하는 것이 민심(民心)이다. 민심은 하루아침에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한다. 이곳으로 모아졌다가 저곳으로 가기도 한다. 어떤 때는 무른 것같이 보이지만 어떤 때는 가을날의 서리처럼 무정한 것이 민심이다. 시국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정리와 법리를 떠올리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