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의혹(疑惑)과 의심(疑心)이란 말을 흔히 듣는다. 그 말이 그 말 아니냐고 이야기할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 의심은 주관적(主觀的)인 것이고 의혹은 객관적(客觀的)인 것이기 때문이다. 의심한다는 것은 확실히 알지 못하거나 믿지 못하여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런 마음을 지닌다는 것이다.
괴이하게 여긴다는 것이고 때로는 그 일로 인해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의혹은 의심하여 수상히 여기는 것이다. 역시 괴이하다는 것이고 헷갈리게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의심이란 말엔 두려움이 내포(內包)되어 있고 의혹이란 말엔 헷갈림이 내포되어 있다는 말이다. 들어있다는 말이다.
왜 의심하게 되는가? 의심하게 되는 단서(端緖)를 보이기 때문이다. 의심하게 되는 실마리를 주기 때문이다. 투명(透明)하면 의심하지 않는다. 조금도 흐리거나 탁한 데가 없이 속까지 환히 트여 맑게 보이면 의심하지 않는다. 의혹에 휘말리지 않는다. 무언가 베일에 가려 잘 보이지 않고 의구심(疑懼心)이 들기 때문에 의심하는 것이다. 의혹을 사게 되는 것이다. 의기심(疑忌心)이 들기 때문에 의심하는 것이고 의혹을 품게 되는 것이다. 무언가 꺼리는 마음이 들고 의운(疑雲)이 걷히지 않기 때문에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먹구름이 몰려오기 때문에 의려(疑慮)하고 의빙(疑氷)이 풀리지 않기 때문에 의심하고 염려하는 것이다.
의심의 단서를 주어서는 안 된다. 특히 지도자는 그러해야 한다. “군자는 일이 벌어지기 전에 방비하고 의심받을 곳에 서지 않는다. 외밭에서 신발 끈 고쳐 매지 않고 오얏나무 아래에서 관을 고쳐 쓰지 않는다(君子防未然, 不處嫌疑間,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오해받을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 오해받을 일이 생기기 전에 미리 방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도자가 큰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고 막상 큰일이 일어나면 우왕좌왕하고 책임을 떠넘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지도자는 자격을 갖췄다고 할 수 없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라면 사전에 예방하고 통제해야 한다.
의혹을 사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관리하고 통솔(統率)해야 한다. 스스로 경계(警戒)하고 성찰(省察)해야 한다. 어찌해야 하는가? 초심(初心)을 잃지 말아야 한다. 물론 초심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진심(眞心)이 있어야 한다. 초심만 앞세우다 보면 자기중심적(自己中心的)인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고 남을 위한 배려(配慮)가 부족할 수 있다. 타인과의 관계성과 진정성(眞情性)이 결여되면 오히려 초심을 빛바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심이 초심되지 못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정(中正)과 중용(中庸)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초심과 진심이 근간(根幹)을 이루되 때로는 좌우의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경청(傾聽)이 필요한 이유이다. 남의 말을 들어야 한다. 특히 현자(賢者)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작은 부처를 잘 모시라는 말이 있다. 소외(疎外)받는 소수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라는 말이다. 소외받는 소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조직에서 분란이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만장일치(滿場一致)를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