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사람 이원이 영평의 백로주에서 물에 빠져 죽었다. 그의 처 박씨는 비보를 들은 뒤부터 남편을 따라 죽을 것을 결심하고 한 모금의 물도 입에 넣지 않은 채 나흘동안 손수 수의를 지으며 시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시신을 건지지 못하게 되자 논의가 허장을 치르자는데 이르니 박씨는 하늘에 빌었다.
“만약 비가 내려 물이 불어난다면 저는 물 속에 몸을 던져 남편을 따를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 안 되어 과연 큰 비가 내리니 가만히 나가 앞개울로 달려갔다. 어린 자식이 울부짖으며 따르고 계집종은 옷을 붙들고 말렸지만, 한 번 돌아보고는 물 속에 몸을 던졌다. 백로주와의 거리는 20리나 되었는데 닷새 후에 두 시체가 나란히 한 곳에 나타났다. 가족들이 함께 건져올려 합장해 주었다. -삼강록」
이 글은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 열녀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향견문록은 조선조 유재건이 지은 책이다. 유재건은 자는 덕초(德初), 호는 겸산(兼山) 본관은 강릉, 규장각 서리로 근무하며 ‘열성어제’를 편찬한 공로로 왕의 은천을 받았고 고종때는 상호군의 직함을 받기도 하였다. 시문에 능했으며 특히 전서와 해서에 능하여 규장각에 오랫동안 보직됐다.
‘이향견문록’은 조선시대를 따뜻하게 해준 308명의 서민 이야기이다. 저자 유재건은 서민(중인) 출신 서리로 양반이 아니라는 이유로 뛰어난 삶이 기록되어 전하지 못하는 점을 안타까워해 당대의 중요한 문헌과 개인 문집은 물론 이 마을 저 마을의 이야기를 끌어모아 평민열전을 완성했다.
신분적 한계 속에서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며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자부심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박씨 열녀전 외 1편이 더 실렸다)
「겸산 유재건은 흉금이 바다처럼 깊고 넓어 남의 좋은 일을 즐거워하여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것을 그물질하듯 끌어모았고 그 언행, 그 시문밖에 한 가지 한 가지 능력이라도 모두 특별히 기록하였다. 그 마을의 부지런함이 공연한 일이겠는가?
그는 후에 사람으로 하여금 이 책에서 감발됨이 있기를 바란 것이니 어찌 일가의 글일 뿐이겠는가? (조희령의 시문에서)」
우리는 이 책에서 느끼는 바 있어 발간되는 감발을 바랬다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 고향 포천에도 이향견문록같은 저서가 후세를 위해 남겨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