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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이중희] 외교관(外交官) 서희(徐熙) 와 예(禮)가 있다면


이중희 기자 / ijh460325@hanmail.net입력 : 2016년 09월 27일
 
↑↑ 이중희 포천신문 대표이사 ,포천문화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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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고 외교가 중요하지만 현재처럼 외교가 중요한 적이 있었던가 싶다.

국가간의 모든 문제를 외교로 풀지 못하면 결국 전쟁으로 풀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70년 간의 남북한 간의 치열한 대결이 북한의 핵으로 인하여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상황인 것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때 외교로 전쟁을 막았던 우리민족의 최고의 외교관인 고려의 서희와 고조선의 대부(大夫) 예(禮)가 있다면 어떻게 대책없는 북한의 김정은을 이해득실을 따져 설득하여 우리민족을 살릴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된다.

고조선의 대부 예는 고려의 서희에 비길만한 외교가이다.

중국 전국시대 고조선은 만주 전역을 장악한 북방의 강국이었다. 전국시대 7개국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연(燕)나라와 국경을 마주한 고조선은 자주 연나라와 충돌했었다.

연나라가 왕을 칭하면서 동쪽 고조선을 공격하려하자 고조선도 연나라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때 고조선의 대부 예가 전쟁 불가론을 주장하면서 왕을 설득하고 또 연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연나라 왕을 설득하여 전쟁을 막을 수 있었다.

역사에서는 고려의 서희와 고조선의 예를 훌륭한 외교관으로 평가하고 있다.

외교에서는 영원한 우방(友邦)도 영원한 적방(敵方)도 없는 것이다.

조선과 명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초기 명나라는 조선에서 보낸 국서에 무례한 구절이 있다하여 정도전의 압송을 요구했다.

조선에서 거부하자,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조선개국 1등 공신 정총(鄭摠)과 김약항(金若恒) 노인도(盧仁度) 등의 사신들을 억류해 버렸다.

조선 태조 6년(1397년) 11월 신덕왕후 강씨가 사망하자 정총은 주원장이 내려준 옷 대신 흰 상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정총과 두 사람을 모두 죽였다. 이에 격분한 이태조는 요동정벌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태종 6년(1406년) 명나라 성조(成祖)는 안남(安南:베트남)을 징벌하여 갓 건국한 호조(胡朝)를 멸망시키고서 내사(內史)벼슬의 정승(鄭昇)을 조선에 보내 이 사실을 전했다.

즉, 조선도 이렇게 될 수 있으니 복종하라는 협박인 것이다.

이때 태종은 “나는 명나라를 지성으로 섬기고, 한 편으로는 성을 튼튼히 하고 군량을 충분히 저축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라고 명령했다.

즉, 사대외교로 침략의 명분은 주지 않는 한편 그래도 공격 해 오면 결사 항전하겠다는 의지였다. 국익을 위한 사대주의 인 것이다.

그간 우리나라에는 참 한심한 외교관이 있었다.

한 중국 여인에게 반해서 “손 가락을 잘라 드리겠다”는 각서를 써준 못난 외교관이 있었다.

못난 외교관도 문제이지만 그런 인물을 외교관으로 임명한 그 상사도 국가에 필요없는 무능한 공직자들이 아니겠는가.

이중희 / 포천신문 대표이사 ,포천문화원 부원장
이중희 기자 / ijh460325@hanmail.net입력 : 2016년 0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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