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라는 말을 우리는 이제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 우리는 한반도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였는지가 자못 궁금하다. 한반도는 분명히 반도라는 말이 생기고 나서 부터였을 것이다. 반도라는 말은 영어의 peninsula에서 왔다고 믿어진다.
그런데 peninsula를 반도라고 번역하여 쓴 최초의 나라 사람들은 누구일까? 우리나라는 대체적으로 일본의 영어번역문을 따라 쓰고 있는 형편이다. 그들보다 개화가 늦었던 것이 그 이유다. president라는 말도 일본사람들이 대통령이라 번역하여 쓰자 우리도 그렇게 쓰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총통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처음에는 영어 발음을 따라 百俚璽天德이라 표기하였다). 그것은 자기네 역사 속에서 대통령에 해당하는 국가원수를 총통이라고 불러왔기 때문이다.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경우에도 자신들의 최고지도자를 추장이라고 부른 것처럼 미국의 대통령을 추장이라고 불렀다. 일본의 역사에서 국가수장은 언제나 국왕이었거나 다이묘(大名)이었으니 자연히 대(大)자와 함께 통령이라는 말의 합성어로 대통령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보면 peninsula라는 말도 Pen+Insular(섬)이기에 육지에 붙어서 길쭉하게 뻗어 나온 섬같은 육지를 일컬으는 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직역을 한다면 연육도(連陸島)쯤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일본사람들은 이를 반도라고 번역하였다. 일본사람들은 육지를 중심으로 본 것이 아니라 자기네들이 살고 있는 섬을 중심으로 보았기 때문에 번역을 할 때에도 온전히 섬이 되지 못한 반쪽짜리 섬이라고 발상된 것이 아닌가 한다. 섬나라에 살고 있는 일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는 반쪽짜리 섬은 온전한 섬에 비하면 미완성 또는 불완전한 섬을 뜻하게 된다. 육지를 중심으로 돌출된 땅을 보았다면 반섬(半島)이라는 발상을 하지 못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섬을 반쪽으로 쪼개면 그 또한 섬일 수밖에 없는 것.
그런데도 굳이 반도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그 또한 일본사람들의 우월의식에서 생긴 것이라 여겨진다. 자기네들은 온전한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고 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섬이 되려다 만 불완전한 섬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의식의 표출이지 싶다. 그들은 왜정 때에 한국인을 일컬어 한토진(반도인)이라 부르면서 멸시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어쩐지 우리 땅을 반도라고 부르는 것에 약간의 저항감이 있다. peninsula라는 말을 왜 꼭 반도라고 번역해야 하나하는 의심을 버릴 수가 없다. 그 어휘의 뿌리가 육지에 붙어 있는 길쭉한 섬이라는 뜻이기에 육도(陸島)라고 하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우리는 땅위의 다리를 육교(陸橋)라고 한다. 다리는 물을 건너기 위해 놓은 구조물이다. 그래서 한강교다. 그러나 이 물위의 다리를 움푹 파인 계곡이나 교통이 복잡한 도로위에 옮겨 놓으면 그것은 육교가 된다. 또 바다에 있는 물은 해수지만 육지에 있는 호수나 소택같은 데에 있는 물은 육수(陸水)다. 마찬가지로 육지에 붙어있는 섬을 육도라고 해도 하나 어색할 것이 없다. 한반도를 한육도(韓陸島)라 해도 전혀 불편할 것이 없다는 얘기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서도 우리는 서슴없이 “우리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쓰고 있다.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오래 동안 불만이 싸여왔다. 첫째는 한반도라는 말을 쓰는 것이 마땅치 않을뿐더러 둘째는 왜 우리의 영토를 우리 스스로가 한반도로 국한해야 하느냐 하는 점에서도 불만이다.
상해 임시정부가 제정 공포한 헌법(1919년 9월 11일)에서도 제3조는 영토조항이었다. 그러나 그 조항에서는 “대한민국의 강토는 구(舊) 한국의 판도로 한다”라고 되어 있다. 1944년 4월 22일에 5차 개헌에서는 제 2조에서 “대한민국 강토는 대한의 고유한 판도로 한다”라고 했다. 이를 보면 그때까지만 해도 한반도라는 말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강역(疆域)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제헌헌법이 우리의 영토를 한반도로 명시한 것은 남북통일을 전제로 한 불가피한 표현이었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기왕에 영토조항을 헌법에 명기하려면 “우리의 영토는 과거 우리의 역사적 영토를 기본으로 삼는다”로 하면 어떠냐 싶은 것이다. 여기서 “기본으로 삼는다”고 하자고 말하는 것은 어느 나라의 경우에나 영토는 가변적이었던 것을 고려하자는 것이기도 하고 자연발생적으로 우리의 영토로 편입되는 경우도 염두에 두자는 얘기이기도 하다.
여기서 필자가 “가변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거 제국주의시대처럼 남의 땅을 빼앗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가정에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빼앗긴 우리의 땅을 되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간도나 녹둔도나 대마도의 경우가 바로 단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간도는 국제법적으로 무효인 을사늑약을 바탕으로 1909년 청·일간에 간도협약을 통해 중국에 편입시킨 우리의 땅이었다.
그 지역이 원래부터 중국땅이었다면 무엇 때문에 청일간의 협약을 통해 중국측 땅으로 편입시켰겠는가? 2차대전이 끝나기도 전에 간도협약의 당사국인 청이라는 나라는 없어지고 일본은 2차대전으로 패전국이 되었는데도 아무 누구도 간도협약의 효력문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대마도문제 또한 그렇다. 옛날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우리나라는 백두산이 머리, 태백산맥이 척추, 호남의 탐라(제주)와 영남의 대마가 두발”이라 하면서 우리의 지도를 그렸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박사는 48년 8월 18일 대통령으로 취임후 제 일성으로 일본에 대해 “대마도는 예부터 우리 땅이었다. 이제 내놔라!”라고 호통 친 이후 아무 누구도 대마도를 내놓으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 이후 몇 차례나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고 외친 적이 있고 또 한·일간의 해상경계선도 언제나 현해탄이었음을 강조하였다는 사실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일본에서는 현해탄을 현계탄(玄界灘:영문명Genkai Nada) 이라 부른다. 해상경계선이라는 뜻이다.
위치도 대마도 남단에 있는 이끼섬과 본토상에 가로놓여있는 바다다). 녹둔도 역시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이 살고 있었던 두만강 하류의 자그마한 섬이지만 러시아와 청국간의 협약으로 러시아 땅이 되고 말았다.
이와 더불어 “자연발생적”으로도 영토는 가변적일 수 있음을 일아 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지각변동이나 기후변화에 의해 한나라의 영토가 축소되거나 확장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는 것이다. 섬이었던 녹둔도가 지금에는 육속(陸續)된 사례를 염두에 두고 하는 얘기다. 미국의 영토는 상당부분 프랑스나 러시아로부터 매입함으로써 오늘에 이르렀다.
어찌 우리가 언제까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조항 하나에 매달려 있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