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美食家)란 말은 많이 들어봤어도 소식가(素食家)란 말은 좀 생소할 것이다. 낯설것이다. 물론 일상생활에서 ‘소식을 한다’는 말은 흔히들 한다. 그런데 이럴 때 말하는 소식은 적게 먹는다는 뜻의 ‘小食’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식(素食)은 그게 아니다. 여기서는 소반(素飯)을 말하는 것이다.
고기나 생선 따위의 반찬이 없는 밥을 말하는 것이다. 기름지지 않은 담백한 음식을 말하는 것이다. 미식(美食)의 상대 개념으로서 소식을 말하는 것이다. 검소한 음식을 말하는 것이다. 미식이 각종 조미료(調味料)가 많이 들어간 음식이라면 소식은 육류나 인공조미료 같은 것을 거의 쓰지 않는 조식(粗食)을 말하는 것이다.
식도락(食道樂)이란 말이 있다. 여러 가지 음식을 먹어보는 일을 도락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재미나 취미(趣味)로 삼는다는 말이다. 소식이 좋으냐? 미식이 좋으냐? 어느 쪽도 절대적이라고 선뜻 나서지 못한다. 그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추세대로라면 소식(小食)이나 미식(素食)이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
요즘 나온 100세 이상 고령자 통계를 봐도 그렇다. 전국의 상수(上壽) 노인 3159명 중 39.4%가 ‘소식 같은 절제된 식생활’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응답했다. 100년을 산다는 학(鶴)이 장수하는 것은 늘 속이 비어있기 때문이라고 전하는 걸 봐도 소식의 장점이 큰 것 같다.
‘시장이 반찬’이란 말이 있다. 시장이란 배고픔을 점잖게 이르는 말이다. 배가 고파야 음식이 맛있다는 말이다. 음식은 맛있게 먹어야 한다. 맛있게 먹되 욕심을 부려 폭식(暴食)을 해서는 안 된다. 탐욕(貪慾)을 부려서는 안 된다. 탈이 나기 때문이다. 탈이 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허둥지둥 빨리 먹는 것이고 둘은 제대로 씹지 않고 삼키는 것이다. 빨리 먹고 씹지 않는 것이 화근(禍根)이 됨을 알아야 한다. 많이 씹고 천천히 먹는 사람은 절대로 췌장암(膵臟癌)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많이 씹을 때 음식물에서는 섭취할 수 없는 분비물이 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명심(銘心)할 일이다.
또 하나의 비결은 화났을 때는 음식을 삼가는 것이다. 화났을 때 음식을 먹으면 체하기 때문이다. 화났을 때 음식을 먹으면 독기(毒氣)가 서리기 때문이다. 음식 만드는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 기쁜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면 손끝에서 양기(良氣)가 발산하나 기분 나쁘거나 화났을 때 음식을 만들면 독기가 발산한다. 가정에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조리하는 사람을 화나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기쁜 마음으로 웃으면서 음식을 만들고 기쁜 마음으로 웃으면서 음식을 먹는 것이 가장 좋은 식도락이란 말이다. 조식(粗食)이라도 맛있게 만들고 소식(笑食)하라는 말이다.
음식을 탐하면 체하듯이 사욕(私慾)이 지나치면 탈나게 마련이다. 특히 공직(公職)에 있는 사람이라면 조심해야 한다. 공직에 있는 사람이 허욕(虛慾)을 부리고 삿된 짓을 하면 어떻게 되는가? 패가망신(敗家亡身)하게 된다.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공직자가 어떠해야 하는지? 위정자(爲政者)가 어떠해야 하는지? 청백리(淸白吏)를 본받아야 한다. 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그들은 사욕을 멀리 했다. 비가 새는 초막에 우산을 받치고 살면서도 백성들을 걱정했다. 청빈(淸貧)한 삶을 살면서도 백성들의 업(業)에 손을 대지 않았다. 나라의 녹[祿俸]을 받는 신분으로 그리 해서는 안 된다고 다잡았다.
세종대왕은 백성에 대한 책임성(責任性)을 거버넌스 비전의 핵심(核心)으로 삼았다. 그가 상상한 왕은 왕국의 겸허한 종복(從僕)이었다. 대왕은 신분을 따지지 않고 능력 있는 인재들을 높은 자리에 등용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평민(平民)의 복지를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고도의 견제 균형체제(均衡體制)를 수립한 것이다. 덕분에 투명(透明)하게 통치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여 500년 넘게 생존할 수 있었다. 탐심(貪心)을 버리고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