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도 무더위 속에서 어김없이 8.15가 찾아오고 있다. 71번째 8.15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답답하기만 하다. 분단은 여전하고, 북한의 핵실험과 심심하면 쏘아대는 미사일 발사로 촉발된 남·북한 긴장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거기에다 일본의 군국주의화와 독도도발 야욕 등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이 지구상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 까지만 해도 수많은 약소국들이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으로 식민지로 전락했고 그들은 온갖 박해와 억압속에서도 수많은 피를 흘려가며 민족해방투쟁을 하여왔다.
하지만 수십년간의 식민기간을 통해 항일투쟁을 쉼 없이 끈질기게 벌인 민족은 우리민족이 유일하다. 이것은 전 세계에 크게 자랑할 만한 일이나 이런 우리민족의 항일투쟁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승전국들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그 이유로 우리민족은 전후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아무런 발언권도 행사하지 못했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러한 위대한 항일투쟁을 우리 자신도 인정하지 않는 행태를 우리는 계속 보여 온 것이다.
우리는 항일투쟁의 최고 지도자였던 김구 선생님과 김좌진 장군님을 우리민족의 손으로 죽게 했다. 또 일제에서 조선에 폭탄이 터졌다하면 의열단 김원봉이 보낸 사람이었기에 김원봉에 대한 현상금은 김구선생님보다 더 많은 금액으로 천정부지였다.
김구도 여운형도 안창호도 김일성도 다 일본이나 중국관헌에 체포된 적이 있지만 김원봉은 단 한 번도 체포된 적이 없었다. 그런 애국자 김원봉이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 형사 노덕술 따위에게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으니 억장이 무너지는 기막힌 일이다.
풀려난 김원봉은 의열단 동지 유석현의 집에서 사흘간을 대성통곡을 했고, 남북협상길에 북으로 가 돌아오지 않았다.
고향 밀양에 남았던 조선 최고의 독립운동가 가족들은 월북자 빨갱이 가족이 되어 6·25전쟁이 터지자 친동생 셋과 사촌 다섯이 빨갱이로 몰려 학살 당해야 했다. 이 얼마나 분통터지는 친일파에 의한 불행한 역사인가.
또한 8·15 해방 후 살아남으신 항일투사들과 그 후손들은 국가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 가난의 대물림으로 사회의 최하층민으로 살아와야 했고 지금도 그 현실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항일투쟁의 혁혁한 공을 세우셨던 홍범도 장군님은 해방 후 카자흐스탄에서 자그마한 극장에서 문지기를 하시며 추위에 떨며 사시다가 돌보는 이도 없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러한 애국자가 대우받지 못하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어디에 있단 말인가.
또한 독립투사들의 후손들은 하층민들이 신분 상승의 기회로 가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였던 고등교육의 기회마저 철저히 박탈당했었다.
하지만 일제하에서 일본에 빌붙어서 민족을 팔아먹거나 일제의 제국주의 침략정책에 적극협력하여 우리민족을 박해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린 친일파들은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 역대독재정권의 비호하에 해방 후에도 처벌은 커녕 대한민국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했다.
항일투사를 고문한 고등계형사는 경찰고위직을 독점하여 또다시 독립투사들과 민주투사들을 고문했었고, 일제 하 판, 검사들은 또 다시 대한민국의 검찰권과 사법권을 장악했다.
황국신민화에 앞장섰던 교육자들이 또 다시 대한민국의 교육계를 지배해 독재정권의 이데올로기를 학생들에게 강요했었다.
한마디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항일투쟁을 하면 3대가 망하고, 국가와 민족을 배신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는, 의롭지 못한 사람이 더 잘되는 기막힌 현실이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니 정의니 인권이니 자유민주주의니 하는 인류보편적 가치들이 제대로 존중될 수 없었고, 이것들을 제대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도 어려웠었다.
일본이나 중국의 역사왜곡과 군국주의화에 대응할 수 있는 내적동력 또한 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독립투사들의 후손들과 의로운 사람들이 잘 되고 대우받는 것을 보아야한다.
그래야 북한의 김정은 3 대세습독재정권과의 대결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워야하는 가치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친일파는 잘살고 항일투사는 해방된 뒤에도 고생을 한다면 그것을 보고 자란 후세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바쳐 싸워 자유민주주의를 지켜 낼 의지가 생기겠는가 반성해 볼 일이다.
독일의 ‘나치 범죄를 부인하면 5 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는 독일 형법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람은 스스로를 모독한 다음에야 타인으로부터 모독을 받는다’고 했다,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