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see’라는 단어와 ‘look’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런데 왜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고 할 때에 ‘I look at you’라 하지 않고 ‘I see you’라고 말할까. look은 어떤 의도(意圖)를 가지고 목표물을 응시(凝視)하는 것이고 see는 그냥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연히 ‘다음에 또 보자’고 할 때에 ‘see you’라고 말하는 것이다.
‘see’는 이처럼 ‘look’에 비해서 보는 사람의 주관적(主觀的) 판정이나 의도가 많이 제거(除去)된 말이다. look보다 더 전면적이고 개방적(開放的)인 뜻을 지닌 말이다. 뜻글로 볼 때 see는 견(見)에 해당하는 말이고 look은 시(視)에 해당하는 말이다.
見은 견학(見學)이란 말에서 보듯이 여러 가지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특정한 것을 꼬집어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들어오는 대로 여러 가지 것들을 포괄적(包括的)으로 보는 것이다. 한 가지만 응시하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와이드(wide)하게 보는 것이다. 광각(廣角)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다. look은 그게 아니다. look은 한 가지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look이란 말엔 반드시 ‘look at me’나 ‘look at you’처럼 ‘at’이라는 단어가 뒤따른다. 어떤 한 가지에 집중할 때 응시(凝視)라고 말하는 이유이고 주시(注視)한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응시가 반복되면 관찰(觀察)이 된다. 관찰이란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이다. 관심이 그만큼 중요하다.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스쳐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실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觀點)에서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frame) 안에서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고 관찰을 계속하다보면 그 틀에서 벗어나게 된다. 관찰하고 또 관찰하면 어느 순간 보는 사람이나 보이는 대상이 구태(舊態)를 벗게 된다. 대상을 통하여 내가 새로워지고 대상 또한 새로워진다.
물론 ‘look’이란 관점이 중요하다. 그러나 거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look이란 관점에서 see라는 관점으로 시선을 넓혀가야 한다. 응시(視)에서 벗어나 견해(見)를 넓혀나가야 한다. 견해를 넓혀가려면 개방된 마인드(mind)를 가지고 접촉하고 대해야 한다. 대상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그리고 성실(誠實)하게 대해야 한다. 어느 것은 되고 어느 것은 안 되고 또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해서는 안 된다. 모두를 포용(包容)해야 한다. 모든 것을 수렴(收斂)해야 한다. 거기서 진실을 찾고 진리를 추구(追求)해야 한다. 객토(客土) 작업을 통해 척박한(sterile) 땅을 비옥한(fertile) 땅으로 바꾸어나가듯이 말이다.
객토작업이란 논바닥에 새로운 흙을 뿌려 땅심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농부들은 늦가을부터 이른 봄 사이에 객토작업을 한다. 풍부한 영양물질을 함유한 황토나 하천 중적토(沖積土)를 논에 뿌려 소출(所出) 증대를 도모한다. 땅을 깊게 갈고 낙엽 볏짚 두엄을 넣어 지력을 증진시킨다. 마찬가지로 사회의 객토작업을 해야 한다. 그를 통해 우리나라와 풍토를 일신(一新)시켜나가야 한다. 객토작업으로 지력을 증진시켜나가듯이 視(look)에서 見(see)으로 시야를 넓혀 정치풍토를 쇄신해야 한다. 외눈박이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야를 확보(確保)해야 한다. 당한 후에 외통수를 후회해봐야 소용없기 때문이다.
정치가 되었건, 학문이 되었건, 예술이 되었건, 산업이 되었건, 새로워지는 일을 감행(敢行)하려면 우선 보아야(see) 한다. 오픈 마인드(open mind)를 가지고 보아야 한다. 스스로를 지배하고 있는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의식을 버려야 한다. 구태를 벗어던지고 허심(虛心)으로 돌아가야 한다. 욕심을 버리고 무심(無心)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일은 결국 새로워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새로워진 사람은 볼 수 있고, 볼 수 있으면 새로워진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견(見)과 시(視)를 보듬어 새로움(創造)을 만들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