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글쎄 나보고 미군사 고문단 장군이 ‘베이비 루테나’라고 그래” 6·25 발발 후, 군에 자진 입대하여 육군 소위 계급장을 달고 전방 사단 사열식에서 만난 미합중국군 장성과의 첫 대면 인상을 말하던 김태진 대령이었다. “전투가 치열하고 총포탄이 비 오듯 내리는 최전방에서 총알이 왼쪽 가슴에 뚫고 들어가 오른쪽 옆구리를 관통한 사병이 있었지. 그런데 총 맞은 관통 자국을 두 손으로 압박하며 출혈을 막은 상태로 12km 후방으로 작전상 후퇴를 한 자대를 찾아왔지 뭐야. 눈시울을 적시며 치료하는 소대장인 나를 보고 ‘빨리 치료해야 전선으로 갈 텐데…’하며 자신의 생사보다 전선을 걱정하지더라고” 김태진 대령은 애국심과 적개심 하나로 죽음을 무릅쓰고 전선을 지킨 학도병들의 무용담을 이야기했다. “추운 겨울 눈보라가 치는 동짓날 전선을 지키던 보초는 얼어 죽고 나는 발이 온통 동상이 걸려 썩어 들어가는데 사단장이 와서 후방으로 배치시키라는 명령을 내렸지. 그러나 나는 끝내 거절하고 고지를 사수했다네. ‘동상쯤이야 괜찮습니다. 전선이 안정되면 치료해도 됩니다’라고 사단장님께 전했지” 사단장도 정해관 대령의 고지사수의 결의와 고집을 끝내 못 꺾었다고 한다.
매일같이 포천경찰서 마당에서는 장병들의 장행회가 열리고 군 입대 장병들이 모여 점검을 마치고 점호가 끝나면 밤새도록 달구질 소리를 합창하고 이튿날 새벽 입대하러 군 트럭을 타고 떠났다.
“뭔데 사람들이 좋게 에이리 달고 / 이제 가면 언제오나 에이리 달고 / 통일되면 다시 오나 에이리 달고 / 부모님의 당부 명심 에이리 달고 / 나라 위해 용감하게 에이리 달고 / 승리하고 돌아오세 에이리 달고” 달구질 소리는 우렁차고 장엄했다.
총·포탄이 비 오듯 하는 전선으로 출정한 장병들이 있었기에 오늘 날 우리는 자유 대한민국의 깃발 아래 번영하듯 나라 풍요로운 자본주의 시장경제 하에서 행복을 누리고 살고 있는 것이다.
정해관 대령과 김태진 대령은 정치군인이 아니라 오직 조국수호의 기백으로 평생을 군문에서 소·중·대대장·연대장·참모장·부사단장 등 적군과 싸우며 최일선에서 보냈다. 애국심 하나로 산 호국정신의 모범군인이었다. 포천중학교 제1회 졸업생이기도 하다. 유행가가 히트를 쳐도 모교 교정에다 기념비나 동상을 세우고 그 외에도 수천개의 기념비나 동상이 세워지는 한반도이다. 내 고향 포천의 6·25 전쟁 영웅 정해관·김태진 대령의 기념물 하나쯤은 세워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