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는 고비가 있고 시대가 바뀌면서 마디로 나누어진다. 아시아`태평양에선 지금 그러한 고비를 맞고 있으며 그 중심에 한반도가 있다. 이렇듯 고조되는 위기와 긴장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여러 행동주체의 선택이 복합적으로 만들어 내는 결과이기에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위기의 성격을 진단하기 어렵다.
1945년 2차대전의 종전은 현대사에서 시대전환의 큰 마디였다. 첫째, 제국주의시대의 막이 내렸다. 동시에 극단적 이념을 앞세운 전체주의와 군국주의에 대한 부정이 보편화 되었다. 둘째, 두 번의 세계대전의 처참한 경험을 토대로 세계평화에 대한 전 인류적 갈망이 국제연합체제를 출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소련이 주도한 동서냉전의 시기가 뒤따랐으나 1990년 독일통일과 소련의 해체로 상징된 탈냉전으로 지구촌시대의 가능성을 되찾으며 21세기를 맞았다.
포스트냉전시기의 유럽은 동유럽 국가들의 가입으로 확장된 유럽연합이 평화와 공동번영의 지역적 협동체제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아시아에선 아세안 10개국의 공동보조가 그러한 추세에 동조하였다. 그러나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미국과 중국이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좌우할 두 초강대국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대서양국가임을 자처하였던 미국이 인구와 경제중심의 서부로의 이동, 하와이`알라스카의 주(州) 승격 등 추세에 적응하며 아시아`태평양국가임을 의식적으로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시장경제의 세계화추세에 개방정책을 앞세워 적극 참여한 중국이 제2의 경제대국이 되었을 뿐 아니라 미국과 더불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미래를 좌우하는 정치`군사대국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러한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강대국관계는 동북아시아에서 새로운 세력판도의 가능성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이 안보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 한국과 한`미`일 3자협력써클을 형성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 지리적 인접성과 문화적 유산을 나눠 갖고 있는 한`중`일 3국이 특별한 협조관계를 제도화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3국협력사무소가 서울에서 문을 연지 6년이 되었다. 이러한 두 개의 3국협력써클을 어떻게 상오배타적이 아닌 협조 및 생산적 관계로 이끄느냐가 아시아 평화에 기여하는 가장 시급하고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국이 중국 주도의 AIIB에 가입한 것이나, 작년 베이징에서 열렸던 승전기념식에 박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바로 그러한 평화외교의 일단이었다. 제주에서 열리고 있는 일련의 국제평화회의도 그러한 평화체제구축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미중관계, 그리고 한미일, 한중일 두 써클관계가 평화번영으로 향한 협력관계로 발전하는데 당면한 최대의 걸림돌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 북한핵문제이다. 이 문제의 성격은 20세기 현대사의 전개과정 속에서 진행된 북한체제의 생성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20세기 초 일본제국주의에 강점당했던 당시의 한국의 독립운동은 처음부터 조선조로의 회귀가 아닌 새로운 공화국의 건립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모델을 찾게 되었다.
1917년 레닌의 볼셰비키혁명과 소련의 출범은 조선공산주의운동의 모델이 되었던 반면, 1차대전후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한 우드로 윌슨대통령의 미국은 자유민주주의계열의 모델이 되었다. 이러한 독립운동 내의 좌우 두 계열의 대립은 1945년 2차대전의 전승국인 미국과 소련이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의 남북으로 진주하면서 1948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두 국가체제 건립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로 동서냉전의 최전선으로 3년여에 걸친 한국전쟁을 치르게 되었던 것이다.
지난 60년간 남북한 대결이 보여준 특징은 남측이 국제화, 세계화의 흐름에 적극 동참한데 비하여 북한은 스스로 ‘우리식’을 고집하는 예외화의 길을 택한 것이다. 냉전의 종결과 한국의 민주화 및 러시아, 중국과의 수교가 진행되던 1989년 한국이 여야합의로 확정한 새 통일방안은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복원 발전시키는 목표를 향하여 남북 두 국가체제가 평화적으로 협조하자는 내용으로 남북 간의 긴밀한 협의를 가능케 하였다. 그 결과로 1991년 두 당국은「남북기본합의서」, 유엔동시가입, 「비핵화공동선언」이란 평화통일로의 진전을 가져왔다.
1994년 김일성주석이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사망한 이후의 남북관계, 특히 북한핵문제는 급전직하로 악화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와 궤를 같이하여 북한체제의 극단적 예외화도 가속이 붙어가고 있다. 국제사회의 일반적 흐름은 차치하고, 아시아공산주의체제의 대표적 국가인 중국과 베트남의 개방정책이나 발전노력과도 판이한 길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한 역사의 흐름으로부터의 예외화 또는 이탈이 영구적으로 가능한가의 여부는 학문적 논의의 주제는 될 수 있으나 평화를 지키려는 이웃이나 국제사회의 입장에선 무한정 방관할 수만은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더욱이 근래에 들어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에 맞서 좌우간 결판을 내겠다는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7차 노동당대회를 계기로 북한이 비핵화와 평화협정 등 당면과제를 일괄 타결하는, 군사보다는 외교의 차원에서 평화적으로 풀어가는 길을 택하기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이웃들은 물론, 국제사회는 기대하고 있다. 평화와 발전은 모두가 예외성을 고집하기보다 동질성과 당면한 과제의 처리를 우선할 때 가능한 것이다. 사실 협의와 협상을 통한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노력에 동참하는 것은 약자가 아닌 강자들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그러한 길로 가는 문을 열기 위하여 국제사회와 남북한은 한 번 더 노력해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