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보 레알리즘이란 한마디로 ‘산업사회의 현실’, ‘산업사회의 일상적인 리얼리티’를 예술로 표현하려는 정신이다. 일찍이 오브제는 뒤샹의 변기사건을 통해 미술계의 논쟁을 불러일으킨바가 있다. 다다이즘의 오브제(예술품이 된 사물)들이 예술과 사회를 부정하기 위해 사용됐다면, 누보 레알리즘의 오브제는 그 반대이다. 도시주변에 널려진 각종 생활 용품과 산업 쓰레기에서 새로운 신화를 찾고자했다. 작가들은 산업사회에서 생산된 쓰레기나 폐기물의 표현을 통해서 그들의 미적 체험을 구체화 하고자 하였으며 하나의 오브제는 물체로서의 오브제가 아닌 상징적으로 변형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누보 레알리스트에 의해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투명한 플라스틱 박스에 수거된다. 깡통, 구겨진 신문지, 낡은 천 조각, 엉킨 전기선, 다 써버린 향수병, 쪼그라진 연고 튜브...분류되지 않은 도시의 배설물들이 투명박스에 갇혀서 화랑으로 실려 간다. 그러면 빛나는 조명을 받으며 금보다 더 비싼 예술품으로 둔갑한다.
아르망의 작품 「축적된 쓰레기통」(1959)은 아마 미래의 고고학자들에게는 보석 상자만큼 값진 것이 될 것이다. 산업쓰레기에서 신화를 만들자 예술가들은 도시의 뒷골목을 뒤지고, 누더기가 된 거리의 포스터를 수집한다. 야적장에 쌓인 고철을 뒤적이고 폐차장을 헤매고 다녔다. 그들이 눈독을 들인 것은 공장에서 쏟아져 나온 일상용품들의 찌꺼기였다.
아르망이 자동차나 시계 따위를 수북이 쌓아 축적시켜 놓았다면, 세자르는 자동차나 그 밖의 금속 폐기물을 한 덩어리의 입방체로 압착시켜 버렸고, 크리스토는 음료수 병이나 자전거 따위의 실용품들을 포장 밀봉해 둔다. 스포에리는 마치 '함정'을 파놓고 그곳에 걸려든 기물들을 포획하듯, 이리저리 나돌아다느는 잡다한 생활 용품들을 수집하여 패널에 박제해 놓는다. 그의 벽(패널)에 걸린 오브제 콜라주에는 사회적 비평이 있고, 일종의 문화적 무게가 담겼다. 팅겔리는 죽은 기계부품들을 우습게 엮어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다. 뒤프렌느, 양스, 레이스 등은 찢겨진 상업포스터와 애중 매체물들을 모아 현대의 생활 이미지의 저장소로 삼았다. 누보 레알리즘 오브제들은 이렇게 도시의 사사로운 이야깃거리나 시적인 정서, 시대의 초상화 같은 서술성이 있으며 작가의 주관적인 정서가 담겨있다.
↑↑ 도판1) 아르망Arman, 축척된 쓰레기,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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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의 사물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 누보 레알리즘은 오브제를 현대문명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물질문명의 병폐 속에 황폐화 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물질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들은 1960년을 전후한 과도기 속에서 모든 가치의 전복을 시도함과 동시에 산업적이고 도시적인 현대적 자연에 대한 각성을 유발하였다. 그들의 작업은 20세기 소비사회의 문맥 속에서 산업문명의 팽창에 직면한 인간의 이상과 꿈을 지키고자 한 미술과 미술가들의 개념을 재확인하는 시도였다.
이 그룹은 미국의 네오다다(Neo-Dada)에 상응하는 유럽의 화풍으로 여겨졌고 또 아방가르드의 주도권을 뉴욕으로부터 탈환해 아방가르드 미술이 자리 잡기에 여전히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곳인 파리로 되돌리려는 최후의 필사적인 노력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