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추상표현주의가 있었다면 유럽에는 앵포르멜이 있었다.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으므로 앵포르멜에 대한 설명은 따로 하지 않고 간략하게 유럽판 추상표현주의라고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오늘은 추상표현주의 열풍이 휩쓸고 간 미국과 유럽에 등장한 또 다른 미술운동에 대해 애기해 보고자 한다. 그 새로운 미술은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물질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은 전후 유럽과 미국의 현대미술을 주도한 주요 미술운동 그룹이었다. 1960년대에 이르자 앵포르멜을 비롯한 일련의 추상적 형식미술은 아카데미화 하기 시작했고 이것에 반대하며 새로운 경향의 전위미술의 필요성을 주장한 인물이 바로 프랑스 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Pierre Restany (1930~2003)이다.
그는 기술적 혹은 산업적인 도시의 현실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다루고 있는 여러 미술가들과 함께 1960년 4월 이탈리아 밀라노 아폴리네르 화랑에서 제1차 선언을 발표하고 <현실에 대한 새로운 지각적인 접근, new perceptual approaches to reality>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누보 레알리스트’ 전시를 기획, 전시하였다.
↑↑ 도판1) 아르망Arman, 축척된 쓰레기,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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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오브제와 공업화, 기계화에 따른 산업 생산물을 그대로 작품으로 제시한 이 전시는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자각을 일깨웠다. 그는 현대의 자연은 기계화되고 공업화되어 광고로 가득 찬 것이므로 누보 리얼리스트는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연을 그대로 제시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략적 필요성에서 그룹이 결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정식으로 ‘누보 레알리스트’로서 그룹이 결성된 것은 같은 해 11월 이브 클랭Yves Klein(1928~1962)의 작업실에서였으며, 이어 그해 말에 파리에서 열린 제2회 전위미술제에서 작품 전시, 1961년 5월 파리 J화랑에서 제2회 전시 <다다보다 40도 위>를 개최하고 선언서를 발표함으로써 그 주장을 보다 명확히 했다.
도시문명이 일상의 자연이 된 현실을 누보 레알리즘은 직시하고 있었다. 누보 레알리즘은 인류가 자연의 부산물에서 재료를 발견하여 예술을 했듯이 현대의 대량생산 시스템에 의해 생산된 도시의 부산물에서 예술을 하는 것이 현대적 자연을 제시하는 것이라 생각 하였던 것이다.
이 방법은 누보 레알리즘의 가장 중요한 이념으로, 이브 클랭의 비물질화 사상에서 발전한 것이다. 즉, 공업화된 사회를 현대의 자연으로 보아, 그 속에서 생산되는 물체를 무매개적으로 제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물 컵은 우리가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용도를 가진 물체이다. 그런데 이 물 컵에서 물 컵의 목적과 의미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인간을 떠난 물 컵은 이제 물 컵이 아닌 그 자체만 남게 된다. 기능성을 버리게 된 물 컵은 그 자체로서 독립된 형태이자 물질이다. 완전히 포맷된 하드디스크라고 보면 될까?
이 새로운 물질은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순수한 원재료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 수많은 물 컵들을 쌓을 수도 있고 부숴버릴 수도 있고 녹일 수도 있고 칠을 할 수도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이렇듯 누보 레알리즘에게 도시의 환경은 그 자체가 창조의 대상이었으며 그 도시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산업생산품들, 즉, 일상의 오브제들은 그들에게 필연적인 소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