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천년 전 중국 역사학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사마천이 지은 史記(사기) 회음후열전(淮陰侯列伝)에 「[狡兎死 良狗烹, 高鳥尽(진-다할) 良弓蔵(장-감출): 날랜 토끼를 잡은 좋은 개는 삶기고, 높이 나는 새를 쏜 명궁은 감추어 진다」는 풀이로 회음후(淮陰侯)는 韓信(한신)의 爵号(작호)로 候는 왕위 서열 순서 두 번째에 해당하는 位(위)이다.
마을의 정자나 나무 그늘 밑에서 장기를 두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끔은 볼 수 있다. 이 장기의 근원이 되는 유방과 항우의 楚漢戦(초한전)에서 한나라 고조 유방이 항우를 무찌르고 천하를 차지하는 데 가장 큰 무공을 세운 것은 한신이었다. 항우가 패전하여 죽고, 천하가 한나라로 된 후 高祖(유방)에게 한신은 가장 큰 위험한 인물로, 한신이 딴 마음만 먹으면 유방의 한나라는 하루아침에 다른 성씨로 바뀌기는 쉬운 일이었다.
한신의 공로도 크지만 그의 비위를 건드릴 수가 없어 우선 楚(초)나라 지역에 왕으로 봉하고 淮陰侯(회음후)의 작위를 주어 보냈지만 그래도 유방은 마음을 놓지 못했다.
항우의 부하로 유방을 수 없이 괴롭힌 종리매(鍾離昧)란 장수가 옛 친구였던 한신에게 위탁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유방은 “종리매를 체포하라”는 명을 내리지만 한신은 우정을 배신할 수 없어 차일피일 미룬다. 이 일로 인하여 한신이 역모를 꾀하고 있다는 고변 상소를 받은 한 고조는 즉시 어전 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 하였다.
장수들은 즉시 출동하여 한신을 잡아 오겠다고 하고, 陳平(진평)을 비롯한 대신들은 초나라는 용맹스런 장수와 정예 군사도 많고 모두 날쌔기 때문에 섣부르게 침공을 하였다가는 큰일을 당하게 된다고 하며, “폐하께서 초나라 국경이 가까운 陳(진)으로 행차하시어 그곳으로 제후들을 모이게 하면 다른 나라에 온 한신이 무슨 힘을 쓰겠습니까? 그때 체포하면 될 것입니다”라고 조언했다.
유방이 진평의 말을 받아 들여 진나라에서 제후 회의를 한다고 한고조는 명을 내렸다. 폐하의 명으로 소집한 회의에 안갈 수도 없고 종리매를 체포하라는 명을 받고도 체포하지 않았으니 한신은 마음이 초조하였다.
반란을 일으켜 볼 생각도 하였으나, 대신 한 명이 지금이라도 종리매를 체포하자고 하였다. 고민하고 있는 한신에게 종리매는 “한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그대 밑에 있기 때문이다. 그대가 나를 잡아 한고조의 환심을 사고 싶다면 당장이라도 죽어주겠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대도 끝장이 나고 말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래도 한신이 여전히 망설이자 종리매는 한신에게 “그대는 長者(장자-덕있는 사람)가 아니다”라고 꾸짖고 스스로 목을 쳤다.
이후 한신은 종리매의 목을 한고조에게 바치고 배알을 하였으나, 한고조는 즉시 장수에 명하여 한신을 체포하여 죄인을 운반하는 수레에 싣게 하였다.
한신은 “과연 전해오는 말과 똑같다. 날랜 토끼를 잡은 좋은 개는 삶기고, 높이 나는 새를 쏜 명궁은 감추어진다.(狡兎死 良狗烹, 高鳥尽, 良弓蔵. 적국이 완전히 패하면 승리국의 장수와 謀臣(모신)은 죽는다고 했다. 나도 죽임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구나”라고 말한다.
‘狡兎死 良狗烹’ 이 여섯자에서兎死狗烹(토사구팽)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났으며,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다. 특히 공직선거 후 당선인의 논공행상에 가장 큰 골칫거리가 이것이고, 배반 이탈, 무리한 임용, 이권개입과 청탁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