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터크먼(B.W.Tuchman: 조민·조석현 역)이라는 사람이 오랜 기자 생활을 통해 터득한 역사의식으로 저술한 『독선과 아집의 역사』라는 책을 보면 독선과 아집에 찬 지도자들에 의해 역사가 얼마나 비참하게 엮어져 왔는가를 속속들이 설명해 주고 있다. 그는 플라톤으로부터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권력과 부패, 인권과 자유와 질서와 같은 거대담론에 대해서는 시시콜콜히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정작 현실적인 정치에서의 아집과 우둔함에 대해서는 마키아벨리를 빼고는 아무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집과 우둔이야말로 ‘세상에 만연한 만성질환’인데도 그랬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아둔함의 원인을 많은 사람들의 질시와 불만 섞인 눈초리를 외면하고 자신의 지위가 영원하리라고 착각한 데에서 연유한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17세기 중엽 무려 반세기동안이나 스웨덴의 총리직에 있었던 악셀 옥센셰르나(Axel Oxenstierna)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들에게 남긴 유언을 소개 해주고 있었다. “아들아! 이 세상을 얼마나 하찮은 자들이 다스리고 있는지 똑똑히 알아 두거라”고.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피터(Peter)의 원리’라는 것이 있다. 이 또한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들이 모든 분야의 정상에 앉아 있는지 알기나 하는가”를 묻고 있는 원리다. “모든 사람은 무능한 단계에 도달할 때 까지 승진 한다”는 것을 원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역설적으로 설명하면 “최고 정상까지 승진해서 더 이상 승진할 지위가 남아 있지 않게 되면 새로운 욕망이 생길 이유가 사라지고 그 지위의 타성에 젖어 스스로 무능해 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왕자로 태어나 왕이 된 사람으로 옆에 있는 화로를 치울 줄을 몰라서 죽은 왕이 있다. 17세기 초 스페인의 펠리페 3세라는 사람이다. 잠시자리를 비운 몸종이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그만 고열로 죽은 것이다. 아둔함과 무능의 극치일 것으로 여겨진다. 지위가 가져다 준 타성에 젖어 스스로 무능해진 결과라 여겨진다.
이처럼 지도자의 어리석음이 그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민을 도탄에 빠뜨리게 한 사례는 실로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대표적인 사례로 터크먼은 아스텍왕국의 국왕 목테수마의 경우를 들고 있다. 콜럼버스가 남미대륙을 발견하고 나서 스페인군사가 맨 처음으로 찾아 나선 곳은 멕시코였다. 이때 멕시코의 아스텍 왕국은 신비스러운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되고 있었다. 번쩍이는 황금으로 장식된 궁전에서 국왕은 침략해 오는 스페인 군사에 대항 한번 하지 않은 채 맥없이 자신의 나라를 내어 주고 자신도 화형으로 죽는 비극을 연출하였다. 종교적 신념이 망상으로까지 발전된 경우였다.
그렇다면 정치적 신념이 망상으로까지 발전되는 경우는 왜 없을 것인가? 어떤 정당성이나 현실적 실현성이나 합리성이나 역사성을 지니지 못하는데도 계속 그 신념의 누에고치 속에서 잠자고 있다면 그 신념은 결국 망상으로까지 발전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역시 히틀러를 드는 것이 제격이 아닐까. 1945년에 접어들면서부터 히틀러는 극도의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공항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암살음모에 관여하였던 사막의 여우 롬멜 원수를 비롯한 수많은 유능한 장군과 정치인에 대한 무자비한 복수를 감행하였다. 전쟁의 패배가 서서히 눈앞으로 다가오는 듯하자 그는 위대한 독일국민에게 있어 패배는 있을 수 없는 것이고 패배로서는 살아남을 가치가 없는 존재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는 명령을 내린다. “독일에 있는 모든 공업 기지와 통신 기지를 남김없이 파괴하여 적군에게 넘겨주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김정은이 만약 이런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상상하면 얼마나 소름끼칠 일인가. 걱정될 뿐이다.)
1차 대전 당시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작전(일정 지역 내 항해 선박은 무조건 격침하겠다는 전략)이 보여준 사례에서나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보여 준 사례들도 모두 하나같이 정치지도자들의 독선과 아집과 오만의 소산임이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영국이 식민지 미국을 잃은 것도 영국귀족과 지배계층의 독선과 아집이었다고 하지 않는가?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낭떠러지로 몸을 던지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이었음이 분명하다. 낭떠러지로 몸을 던지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이 지금이라고 왜 없겠는가? 영웅심으로라도 그러하고 자신의 입지강화를 위해서도 필요할 것이 아니겠는가?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지난 4.13선거 때 보여준 새누리당의 공천파동이었다. 친박 비박하면서 치졸한 ‘막장드라마식’의 공천 경쟁과 악 밖에 안 남은 것 같은 단말마적 표정의 공천 발표가 바로 ‘안달’이 난 작태였다고 할 것이다.
헤로도토스가 말했다던가. “피가 끓으면 인간은 이성을 잃는다”고. 이는 오델로의 경우를 말해준다고 하겠다. 지나치게 끓는 피가 이성을 마비시킨다는 말도 무리는 아닌 듯싶다. 오델로는 그 끓는 피 때문에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 데스데모나를 목 졸라 죽인다. 그러나 끓는 피도 없이 정치에 뛰어 드는 것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햄릿처럼 우유부단함 말이다. 엉뚱하게도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의 연인 오필리아 마저 자살하게 만드는 무능한 정치지도자라면 국민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우리의 정치가 독선과 오만과 아집의 덫에 걸려 깊은 늪에 빠진 채 허우적거리는 것을 본 국민들은 이번 20대 국회의원선거를 통해 그 해법을 제시하였다. 민주당에게는 제1당을 만들어주면서 언제나 정부여당의 발목이나 잡고 있는 아집의 태도를 버리고 정치적 책임도 질줄 아는 정당으로 탈바꿈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였다.
반면에 지금까지 제1당으로 있으면서도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만과 독선에 젖어 있는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에게는 이제는 제1당의 자리를 내려놓고 겸손한 정치를 하라는 주문을 하였다. 국민의 당에 대해서는 기왕에 제3당으로 출범한 이상 지금까지 양당체제가 보여준 대결의 정치를 종식시키고 이제는 중재와 타협의 정치를 한번 해보라는 의미로 그 길을 터 준 것이라 해석된다.
그러면서도 국민들은 어느 한 정당에 표를 몰아주지 않았다. 자중자애하기를 요구한 것이다. 소신껏 일하되 서로서로 타협하면서 정치를 잘해보라는 채찍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정치가 물 흐르듯 잘 되면 안 되는 나랏일이 무엇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