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례현’은 내고향 포천 신읍(장거리)에서 신북면 심곡리(깊이울)를 넘는 ‘물어고개’를 말한다. ‘무릎고개’ ~무릎으로 기어서 넘는 고개 ‘물어고개’ ~묻고 또 물으며 넘는 고개, ‘깊이울 고개’ ~깊이울 마을을 가는 고개… 등으로 불려 왔는데 호랑이가 사계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고개라서 ‘호랑이 고개’라고도 불려 왔다.
특별히 ‘물어고개’에는 ‘성황당(城隍堂)’이 있어 수염이 흰빛을 자랑하는 ‘성황님’이 호랑이를 무릎에 눕히고 오방색으로 장식된 당집에서 그림으로 형상화되어 살았다. 도교(道敎)나 자연신(自然神)을 믿는 내 고향 포천 사람들은 ‘물어고개’를 넘나들 때마다 돌을 던져 소원을 축원(祝願)하고 사계절 가택(家宅)의 안녕과 자손의 입신양명(立身揚名)을 두손모아 빌었다.
청산면 초성리에서 삼정리(신안) ‘가막골’을 넘어 ‘물어고개’를 넘거나 영중면 영평읍에서 포천 읍내(장거리)를 가는 고개이고 험란하여 웬만한 군사(軍士)들이나 과객(過客)들은 넘을 용기(勇氣)를 내지 못하였으며, 특히 호랑이나 늑대의 출몰은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가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고개가 ‘물어고개’였다. 그래서 지도에는 ‘콕’고개 이름을 찍어 표시하였다.
그러나 ‘성독곡(成獨谷)’ 선생이나 ‘목은 허씨’, ‘김해 김씨’, ‘경주 김씨’(신라 경순왕 후손, 고려말 충신), ‘김지수→상촌공’들이 5대째 살며 마을을 개간하고 물어고개 신작로 조성공사를 시작하고 왕방산 국산봉 기슭 원시림에서 백탄(숯)가마를 구워 서울에 보급하고 장작을 만들어 서울의 연료로 공급하고 저수지를 만들어 노임살포로 민생을 해결하고 상심곡·하심곡 양조장과 술청을 만들어 농주를 보급하고 신읍(장거리)과 연천 전곡 직통 신작로를 건설하여 깊이울 ‘물어고개’를 문명의 대로로 만들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병자호란, 러일전쟁의 전쟁 지름길이자 비밀통로로 요긴하게 이용되었으며 독립군이나 의병들의 비밀통로로 ‘물어고개’가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노인들이 많았다(경주 김씨 후손-종가댁 김충렬 옹댁의 종부-‘큰택’할머니).
“왜놈들이 둔지 밭에 진을 치고 밥을 해내라 닭을 잡았네 하다가 아침녘에 삽시간에 사라졌지… 우리 어른들이 잘 못하다가는 가막골 독안에 든 쥐 신세가 되든지…. 호랑이 밥이 될 거라는 말을 듣고 놀라서 도망갔지…”
그렇던 깊이울과 물어고개 넘어가 난데없는 ‘오리 마을’의 유명세를 날리고 ‘수도기계화사단’ 사령부가 수도방어를 하고 있으니 ‘호랑이 마을’이 ‘오리 마을’이 되어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된 셈이다.
필자는 ‘깊이울’에서 태어난 ‘촌놈’이다. ‘벽운동(碧雲洞)’은 수도 서울의 수락산인데 ‘수비성(守備成)’ 골짜기이다. 내가 사는 고장 노원(마들)이다. 그리고, 13대 조부 ‘협자(梜子)공 (인조조 이조판서)’이 사시던 곳이다(바로 내 집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