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歷史)를 돌이켜 보면 문호를 개방(開放)했을 때는 나라가 융성(隆盛)했고 반대로 쇄국(鎖國)했을 때는 대부분 쇠락(衰落)했다. 개방은 문을 열어놓는 것이다. 기밀 비밀 따위를 숨김없이 공개하는 것이다. 금하던 것을 풀고 드러내는 것이다. 포용(包容)은 휩싸서 넣는 것이다. 아량을 베풀어 남을 너그럽게 감싸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다. 일상사(日常事)가 다 그렇다. 빗장으로 닫혔던 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너그럽게 감싸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개방이고 포용이란 말이다. 이처럼 개방과 포용은 같이 가야 하는 것이다. 개방하되 포용하지 않으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개방과 포용은 상호보완적(相互補完的)이어야 한다. 문을 열었으면 새로운 문물(文物)을 적극 수용(受用)해야 한다. 십분 발휘해 내 것으로 소화시켜나가야 한다. 문을 열어 놓고도 우물쭈물하거나 방관(傍觀)해서는 안 된다. 아니 배척(排斥)해서는 더욱 안 된다. 고집(固執)을 부려서도 안 된다. 우리 것으로 승화(昇華)시켜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다고 까치발을 해서는 안 된다[企者不立]. 가랑이를 한껏 벌려서도 안 된다[跨者不行]. 발꿈치를 들면 빨리 보고 많이 알 수 있으리라 기대하나 결코 오래 서 있을 수 없다. 또 보폭을 넓혀서 한꺼번에 성큼성큼 앞으로 빨리 나아가려 하나 계속 그렇게 걸어갈 수는 없다.
역사(歷史)에서 배워야 한다. 명치유신(明治維新)으로 개혁(改革) 개방을 서두른 일본은 융성했고 쇄국정책(鎖國政策)을 쓴 조선은 망하지 않았는가? 개혁 개방을 외면하고 세습(世襲)에 안주하면 그리 될 수밖에 없다. 쇠락(衰落)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정체(停滯)되기 때문이다. 침체(沈滯)되기 때문이다.
아니 부패(腐敗)되기 때문이다. 물은 흘러야 한다. 왜 그런가? 막히면 썩기 때문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정체되면 썩는다. 세습화(世襲化) 되면 썩는다. 활력(活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패거리 사회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나는 모습을 볼 수 없는 사회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근친결혼을 금기시(禁忌視)했다. 유전인자가 열성(劣性)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다 그렇다. 인간만사(人間萬事)가 다 그렇다. 새물을 받아들여야 한다. 새 흐름을 받아들여야 한다. 새로운 문물과 제도(制度)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포용을 말하고 융화(融和)를 말하는 것이다.
새로운 리더십을 갈구(渴求)하는 이유이고 글로벌 리더십을 갈구하는 이유이다. 다양한 주체들과 소통(疏通)하고 협력(協力)하는 개방성(開放性)과 인류의 복지(福祉) 향상을 위한 포용성(包容性)을 지녀야 한다. 이를 외면하고 우리만을 고집(固執)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갈라파고스가 되고 만다.
변화하는 글로벌 시장과 경쟁력 있는 다양(多樣)한 국내외 기업들과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 대기업 집단(集團) 내에 있는 기업들과의 연계(連繫)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인류 복지를 위한 지속(持續) 성장을 외면하고 기업 생존을 위한 자기 성장에만 매몰(埋沒)되서는 안 된다.
구글과 같은 다국적 기업들은 물론 글로벌 시장으로 돌진하고 있는 중국기업들을 보라. 그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다양한 경쟁력 있는 기업들과 제휴하고 인수를 통해 소통하고 협력하고 연결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모든 것을 우리가 다해내겠다는 생각으로 아직도 이웃들에게 문을 굳게 닫아걸고 있지 않은가?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고 하는 말이 있다. 독불장군(獨不將軍)이란 말도 있다. 협력하고 협심하고 공조(共助)하라는 얘기다. 개방하고 포용하라는 얘기다. 거기에 살길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머리가 집단지성(集團知性)을 당해낼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쌜프 과잉에 빠진 빅 미(Big me)보다 내면 성숙을 중시하는 리틀 미(Little me)의 집단에 눈을 돌리라는 얘기다. 알아듣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