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은 색채를 해방시키고 형태를 해체하고 대상성을 포기하고 추상을 선택합니다. 다다에 이르러서는 반예술의 기치아래 예술의 모든 권위를 부정하고 종말을 선언합니다. 뒤샹은 변기를 전시장에 가져다 놓음으로서 기존예술의 질서를 일거에 무너뜨리고 새로운 예술의 세계가 열렸음을 알립니다.
이렇듯 현대예술은 막나가는 듯 하지만 기존의 예술을 반박함으로서 새로운 표현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전략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또 다른 현대예술의 모험을 살펴 볼 것인데 바로 초현실주의입니다.
초현실주의를 한 문장으로 간단히 정의한다면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한 예술사조”입니다. ‘초(超)-현실(sur-real)’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현실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세계를 상상해냄으로써 현실의 억압으로부터 정신을 해방하려는” 지향을 드러냅니다. 예술창작에서 이 지향은 현실을 모방하는 대신, 현실과는 전혀 다른 질서를 지닌 ‘초-현실’의 창조로 이어졌습니다.
논리적 구상과 계획에 따라 제작되는 대신, 즉흥적이고 우연하게 생겨나는 흔적과 자유로운 상상력의 소산물을 소재로 삼고, 한 개인 예술가의 창조력 대신, 누구에게나 내재해 있을 초개인적 무의식을 창작 동력으로 삼았습다. 이들이 남긴 회화와 조각, 문학작품은 이후 현대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충격적 신선함을 줍니다.
↑↑ [삶은 콩으로 만든 부드러운 구조물; 내란의 예감] Soft Construction with Boiled Beans: Premonition of Civil War 1936년작, 100*99cm
ⓒ (주)포천신문사
초현실주의자들은 익숙한 오브제의 변형과 병치를 통해 낯설게 만들어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습니다. 문학에 처음 사용된 오토마티슴이라고 불리는 자동기술법을 미술에 도입하여 우연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미술의 표현영역으로 끌어 들였습니다. 무엇보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초현실주의의 사상적 근원으로 삼고 프로이드의 사상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심리학이란 학문이 미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초현실주의라는 말은 1917년 시인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가 만들었으며, 1924년에 프랑스 시인 앙드레 브르통(Aandre Breton, 1894~1966)이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간하면서 초현실주의를 보다 명확한 형태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말로든 글로든 그 외의 어떠한 수단에 의해서든 사유의 현실 작용을 표현하려고 하는 순수한 심적 오토마티슴, 이성에 의한 아무런 통제 없이, 미적, 도덕적인 선입관 없이 행해지는 사유의 옮겨쓰기’라고 정의했습니다.
브르통은 또 초현실주의의 목적을 ‘이전의 꿈과 현실의 모순된 상황을 절대적 현실, 초현실적 상태로 변형시키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반적인 목적 안에서 서로 상이하면서도 모순되지 않는 수많은 주장과 기술을 상호 혼합시키면서, 이성과 의식적인 통제의 지배를 거부하려고 한 다양한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이러한 초현실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무의식의 깊은 내면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며, 결국 이를 드러냄에 따라 우리의 억눌린 본능은 해방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해방이 궁극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무의식의 세계가 현실과 결합하면서 현실을 풍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작가는 상상의 깊은 수면에 잠수하여 그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시 현실의 표면 위로 떠올라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초현실주의는 상상력과 초월, 꿈의 환상을 주제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막연히 낭만적인 예술로 이해하기 쉬우나 비합리성과 불가사의, 에로티시즘 등의 잠재의식을 통합하여 새로운 의식을 개발하고 또 이로써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인식을 목표로 하는, 기본적으로 실천적인 함의를 지니는 아방가르드 운동이었습니다.
초현실주의의 이론적 배경은 서두에 말씀 드렸듯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입니다. 심리학은 일반적으로 인간 의식의 영역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지만, 정신분석학에서는 감정과 욕망 생각 등이 의식에 의해 억압된 부분이 있다고 보며, 그 부분을 무의식이라고 설정하여 이 부분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며 연구합니다. 의식은 단순히 빙산의 일각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정신분석학이 현대 심리학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나 과학적 증명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현대 심리학계에서는 그다지 인정을 받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미술에 미친 영향은 지대합니다. 미술은 과학적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미술에게 프로이드가 제기한 가설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경학연구소의 인턴으로 일하고 있던 앙드레 브르통(1896~1966)은 프로이트 학설의 방법론이야 말로 인간의 정신을 고정관념과 일상성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마음의 순수한 자동현상'을 기술한다는 입장에서 인간의 정신세계가 논리, 이성 그리고 의식적인 통제의 제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헤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믿음은 인간정신에 대한 총체적인 해방이라는 차원에서 혁명의 단어와 결합을 시도하였고, 결국 1925년에는 초현실주의 운동의 힘을 명백한 정치적 맥락으로 연결하려는 움직임으로 그 의미는 구체화되어 갔습니다.
이처럼 초현실주의는 무엇보다도 개방된 세계를 향한 노력과 이로써 새로운 인간관을 창출하려 했던 움직임에서 그 성과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념을 회화작품으로 구체화하는 데는 명백한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광기는 자칫 광기를 위한 광기의 도취로 보이고, 현실모순의 극복의 의지보다는 현실 도피적 경향을 짙게 내보이며, 따라서 그들의 혁명 이념은 지극히 지식인의 지적 유희와 같은 것으로 비쳐진다는 측면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브르통이 예견하였던바, 30년대 말은 로트레아몽과 프로이트, 트로츠키의 시대라고 규정하였던 것의 참 의미는 그 움직임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실질적인 힘을 상실하게 되었고, 결국 미국에서는 단지 초현실주의의 기법적 측면만이 활용되면서 '추상표현주의'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초현실주의가 중요한 것은 초현실주의는 무엇보다도 무의식의 세계를 미술에 끌여 들여 현실을 일상생활의 현실보다 더 새롭고 깊은 차원 높은 것으로 나타내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초현실주의의 출발지인 다다이즘과의 차이점입니다.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을 기본 이론으로 하던 다다이즘은 이미 그 자신 내부에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반면, 초현실주의는 다양한 기법을 통한 표현의 확대와 상상상의 세계를 향한 시도는 예술 세계에 표현에 대한 제한이 없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현대미술은 계속해서 거칠 것 없는 항해를 질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