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등장은 예술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꾸게 만들었다. 지난 시간 칸딘스키의 작품을 살펴보면서 추상미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추상미술은 말 그대로 구체적인 형태가 없는 관념을 시각적인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칸딘스키의 그림은 어떠한 의미를 우리에게 전달하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그림을 보고 느끼고 발견하기를 원할 뿐이다. 과거의 미술은 재현의 대상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오늘날의 미술은 그런 구체적인 의미정보를 담지 않는다. 단지 작품은 그 자체로 새로운 시각적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현대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가장 곤혹스러운 게 도대체 뭘 그린건지 왜 그린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게 현대미술은 뭘 그리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새로운 존재를 그리기 때문이다. 이제 작품을 감상할 때 작품의 표현대상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있는 새로움을 발견해야 한다. 작가들은 이제는 무엇을 그리는 게 아니라 작가의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는데 내면의 독창성을 새로운 표현을 통해 하게 된다. 현대미술의 실험성은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다.
↑↑ 마르셀 뒤샹, 샘,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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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성으로부터 색과 형태를 해방시킨 모더니즘은 이젠 미술에 대한 정의조차 해체시켜 버린다. 제 아무리 난해한 현대미술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은 모두 작가의 손을 거쳐 그리거나 만들어진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알타미라 벽화를 그렸던 구석기인들의 솜씨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인류역사와 함께 해온 미술의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가 바로 작가의 손에 의해 고유성 즉 작품의 오리지널리티가 만들어진는 것이다.
이 미술의 고유성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개념을 들고 온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마르셀 뒤샹이다.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사람이 마르셀 뒤샹이다.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준으로 B.C와 A.D로 나누듯 미술을 마르셀 뒤샹을 기점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눠도 될 만큼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여러분이 오늘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을 이해하게 된다면 현대미술을 보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현대미술의 개념은 뒤샹의 개념에 힘입은바가 크고 지금도 여전히 뒤샹의 개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뒤샹의 개념에 의해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른바 소변기 출품사건이다.
뒤샹의 소변기 스토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917년 남자 소변기에다가 'R, Mutt' 란 가명으로 '샘'이란 제목을 달아 제 2회 뉴욕 앙데팡당 展에 출품했다. 그 당시 뒤샹은 이미 전위적인 예술가로서 뉴욕화단에 주목을 받던 작가였다. 하지만 아무리 전위작가라도 그렇지 어떻게 변기를 전시장에 들고 올 수 있단 말인가?
작가의 독창성이라곤 어디 한군데도 발휘되지 않은 생활용품 따위를 가지고 오다니 너무 무책임하고 무례한 행동이 아닌가? 당시 전시 관계자들은 차마 그의 작품을 당장 철거하라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전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궁여지책으로 뒤샹의 출품작인 소변기를 커튼으로 가리고 전시회 오프닝을 시작했다고 한다.
전시가 개최되자마자 뒤샹이 전시장에 가져 온 소변기는 예술작품의 정의와 개념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훗날 뒤샹의 회고를 보면 그는 소변기를 작품으로서 들고 온 것이 아니라 미술을 부정하기 위한 상징적인 제스처로 쓰기 위해 가지고 온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자, 그럼 그는 왜 이런 행동을 한 것일까? 그의 이러한 해프닝의 배경에는 다다이즘(DaDaism)이 있다. 그는 다다이즘 예술가 그룹의 일원이었는데 다다이즘은 기존미술의 모든 권위와 질서를 부정하고 그 부정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찾고자 했던 예술운동으로서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운동으로 꼽히고 있다.
다다는 기존미술이 가지고 있는 권위를 부정하는 운동이다. 이러한 극단적 미술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는 1차 세계대전이다. 1차 세계대전의 결과는 참혹했다. 문명국을 자처하던 유럽이 그들이 경멸하던 그 어떤 야만인들보다 더 끔찍한 전쟁을 벌였기에 그들이 받았을 충격과 부끄러움은 상상초월이다. 산업혁명 이후로 급속도로 발전하는 문명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으로 믿었던 낙관주의는 그들이 만든 문명의 이기들에 의해 벌어진 전쟁을 통해 얼마나 허무한 결과를 낳았는지 똑똑히 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전시장에 온 뒤샹의 변기는 미술의 개념에 혁명적 변화를 몰고 온다. 뒤샹은 예술작품과 일상용품의 경계를 허물었고, 뒤샹의 미학은 물건이 넘쳐나는 대량생산 시대의 미학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뒤샹이 전시장에 들고 온 것은 소변기가 아니라 새로운 미술의 정의를 들고 온 것이다. 기성품을 이용하여 작품의 오리지널리티, 원본성, 유일성에 대한 정의를 깨버렸다. 화장실에 용무를 위해 만들어진 소변기는 전시장이라는 예술의 틀 속에서 오브제라는 이름으로 작품이 되었다.
전시장에서 뒤샹의 변기는 더 이상 소변을 받아내는 기능적인 소변기가 아니라 새로운 다른 존재가 된 것이다. 작가의 선택에 의해 평범한 사물은 예술이 된다. 예술은 예술가의 정신, 그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선택’하는 작가의 판단과 그 선택을 만드는 ‘아이디어’이다.
예술가는 손재주가 있는 ‘장인’이 아니고 ‘아이디어를 주는 사람’인 것이다. 이 개념에는 일상에서도 예술적인 걸 발견해내는 게 예술이고 예술가라는 예술영역의 확장이 들어있다. 예술가는 우리의 눈을 크게 뜨게 해주고 생각의 지평을 넓게 해 주는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