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保守)에서 보(保)는 어른을 뜻하는 인(人)과 갓난아이를 두 손으로 감싼 모습인 매(呆)의 합자로 어른이 아이를 두 손으로 지키고 보살핀다는 데서 ‘보전하다’라는 뜻이다. 수(守)는 집의 뜻인 면(宀)과 손의 뜻인 촌(寸)의 합자로 손으로 집을 지킨다는 데서 ‘지키다’라는 뜻이다. 보수(保守)는 ‘보전하여 지키다’라는 뜻으로 재래의 풍습(風習)이나 전통(傳統) 같은 것을 소중히 여겨 지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고 자신의 주장만을 굳게 지키는 고수(固守)나 묵수(墨守)를 가리켜 그리 말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옛 제도(制度)나 관습(慣習)을 그대로 지키고 따르는 수구(守舊)를 일러 그리 말하는 것도 아니다.
진보(進步)란 사물의 내용이나 정도(程度)가 차츰차츰 나아지거나 나아지는 일을 이른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새로워지는 것이다. 보수는 지키는 것이고 진보는 나가는 것이다. 있는 것을 지키는 것이고 새로운 것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이 있다. 옛 것을 연구하여 거시서 새로운 지식(知識)이나 도리(道理)를 찾아낸다는 말이다. 복고창신(復古創新)이란 말도 있다. 과거의 체제(體制)나 사상(思想) 전통 같은 것을 그리워하여 그것을 본뜨면서 새로운 것을 추구(追究)한다는 말이다. 옛것을 지키면서 새로운 것을 창안(創案)해내는 것이 진정한 보수라는 말이다.
보수라고 해서 진보(進步)를 도외시(度外視)해서는 안 된다. 문제로 삼지 않고 가외(加外)의 것으로 보아넘겨서는 안 된다. 반대로 진보라고 해서 보수를 수구(守舊) 꼴통이라고 백안시(白眼視)해서도 안 된다. 보수와 진보가 적대적(敵對的)인 관계가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상호보완적(相互補完的)인 관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의 가치(價値)를 추구하면서 역사(歷史)를 움직이는 두 개의 수레바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말하고 복고창신(復古創新)을 말하는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단순히 과거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옛일에서 빌려와 지금을 말하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갈등(理念葛藤)으로 큰 몸살을 앓고 있다. 갈등만 해서는 안 된다. 의미성찰(意味省察)을 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갈등하는가? 그 의미를 성찰해야 한다. 무엇이 가장 시급(時急)하고 무엇이 가장 최선(最善)인가를 성찰해야 한다. 진정 우리가 지향(指向)해야 할 지표(指標)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그 첫걸음은 국익(國益)에 걸어야 한다. 공공(公共)에 걸어야 한다. 당리당략(黨利黨略)이나 사리사욕(私利私慾)에 걸어서는 안 된다. 나라가 없으면 모든 것이 허사(虛事)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주권(主權)이 없으면 백성(百姓)이 어떻게 되는지 역사에서 보지 않았는가?
‘성찰이 없으면 도약(跳躍)도 없다’고 했다. ‘적을 모르고 나만 알면 한 번 이기고 한 번 진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진다(不知彼而知己一勝一敗, 不知彼不知己每戰必敗)’고 했다. 지금 우리가 어떤 형편에 놓여 있으며 어떤 함정(陷穽)에 빠져 있는가를 곰곰 생각해봐야 한다.
주변정세(周邊情勢)가 우리를 압박(壓迫)하고 있지 않은가? 내부분열(內部分裂)이 우리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있지 않은가?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死則生, 生則死)’고 하지 않았는가? 나라를 위해선 죽음도 불사(不辭)하고 전쟁(戰爭)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불분불계 불비불발(不憤不啓 不悱不發).’ 분발하지 않으면 길을 터주지 않고 애태우지 않으면 가르쳐주지 않는다. 공자의 가르침이다. ‘무지에 분노하지 않으면 갈 길을 터주지 않고 표현에 안달하지 않으면 퉁겨주지 않는다(不憤不啓 不悱不發).’ 역시 공자의 가르침이다.
우리 스스로 나서지 않는데 누가 앞장서서 우리를 도와주려 하겠는가?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한다. 우리가 먼저 선수(先手)를 쳐야 한다. 싸움만 일삼지 말고 새겨들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