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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 이야기] 진자 삼빠이(신사 참배)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6년 02월 22일
 
↑↑ 현운 김창종 수필가
ⓒ (주)포천신문사 
일본의 국교는 신도(神道) 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신단(가미다나 : 神壇)이 있고 아침, 저녁으로 참배(參拜)를 한다. 또, 마을(시·군) 마다 진자(神社)가 있어 명절 때면 참배를 한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를 침략하여 조선신궁(朝鮮神宮)이라고 하여 서울 남다에다 한반도를 대표하는 신사를 지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각 학교마다 호안댐(호안전) 이라고 하여 신전을 짓고 아침마다 등교시 참배를 하였다. 모두 일본의 신(神)을 모신 집이다.

내 고향 포천도 예외는 아니어서 호병골 용두머리에다 신사를 짓고 학생과 주민들에게 참배를 강요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물론 국민학생들은 모두 일주일에 한 번씩 신사참배를 하였다. 또 신사가 보이는 호병골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멀리서도 참배를 하고 지나가게 하였다.

그런데 포천신사를 호병골 용두머리에서 지금의 천주교회 자리로 규모를 크게 하여 옮겼다. 신사의 규모 10배는 되고 그럴 듯하게 신단을 만들었는데 8·15 해방이 되던 날 일주일만에 8·15 해방 만세 군중에 의해 불타고 말았다.

포천국민하교 3학년 부반장 ‘시라다’군이 불을 질렀다는 소문이 났다. 일제 강점기에는 학교 부반장을 지명받아 학급의 부반장이 되고, 머루넝쿨 따기, 광솔 따기에 앞장서서 대일본제국만세를 외치던 폭력두목이 8·15 해방의 날 지은지 일주일 된 신사에 불을 질렀다는 소문을 듣고 학생들은 고개를 갸우뚱 했다.

신사가 불타고 집집마다 모셔졌던 신단이 부서지고 머루넝쿨 따기, 광솔 따기를 안 해도 되고…정말 살 것 같았다. 신사참배, 일본말을 안 써도 되는 해방의 날이 왔으니 정말 8·15해방의 참 뜻을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매일 장거리 사거리에 모여 농악대가 농악놀이를 하고 학생들은 태극기를 들고 조선(대한)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징병 나갔던 젊은이, 징용 나갔던 젊은이들이 일본과 태평양 군도에서 돌아왔다.

일본에는 ‘야스구니 진자’가 있다. 전쟁 영웅을 비롯하여 일본 전범들이 합사되어 있으며 한반도 청년 중 태평양 전쟁(제2차 세계대전) 전사자와 중국 전선에서 죽은 군인들의 위패가 모셔져있다. 학교에서는 ‘나라에 충성하다 죽어서 영혼은 위패가 되어 야스구니 진자에 모셔지자’는 노래를 목청 높여 불렀으며 ‘가미가재 독고 다이’ 양성 소교가 ‘요까랭’ 노래를 소리 높여 불렀다.

일본에는 개인숭배 사상이 팽배하여 일본 도자기 제조법을 가르쳐 준 ‘심수관’을 모신 신사, 임금을 모신 신궁 등 곳곳마다 신도의 신을 모신 신사가 많고 신단을 만들어 신도의 신과 조상신을 모시고 있다.

현운 김창종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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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6년 0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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