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우리는 메르스로 홍역(紅疫)을 치렀다. 그런데 연초부터 지카바이러스라는 것이 또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두 사태를 보면서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면역력(免疫力)과 적응력(適應力)이란 말이다.
면역이란 사람이나 동물의 몸 안에 들어온 항원(抗原)에 대한 항체(抗體)가 만들어져 같은 항원에 대해서는 발병하지 않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같은 일이 되풀이 됨에 따라 습관화(習慣化)되는 현상을 그리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적응은 어떠한 상황(狀況)이나 조건(條件)에 잘 어울림을 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생물이 외계의 변화에 따라 생존(生存)에 알맞게 그 습성이나 형태나 생활방식이 바뀌는 것이다.
면역력이나 적응력이나 그 힘[力]을 말하는 것이고 파워(power)를 말하는 것이다. 힘은 길러야 하는 것이고 배양(培養)해야 하는 것이다. 면역은 체내(體內)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내[自我]게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남[他人]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 몸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고 내 스스로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항체는 생활습관(生活習慣)에서 생겨나는 것이고 섭취(攝取)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내공(內功)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스스로 이겨내는 힘을 쌓아나가야 하는 이유이다. 기본체력(基本體力)을 갖추고 기본실력(基本實力)을 갖추어나가야 하는 이유이다.
적응은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부딪침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상대(相對)와 부딪치고 환경(環境)과 부딪친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어울려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생활(社會生活)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 다툼이 일고 투쟁(鬪爭)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어찌해야 하는가? 상대를 배려(配慮)하고 상대의 입장에도 서보아야 한다. 상대의 의견도 수렴(收斂)해야 한다. 내주장만 해선 안 된다. 더불어 사는 지혜(智慧)를 발휘해야 한다. 공존(共存)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이웃 간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회 간에도 그렇고 국가 간에도 그렇다.
환경이란 자연(自然)을 말하는 것이다. 주변(周邊)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때 자연을 정복(征服)의 대상으로 삼았다. 자연은 더 이상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은 조화(調和)의 대상이다. 조화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적응해 나가야 한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난개발(亂開發)에 뛰어들기 때문에 기상이변(氣象異變)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무리 영리하다 해도 한 치 이마 위를 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자연 앞에 겸허(謙虛)해야 한다. 자연에 순응(順應)해야 한다. 공기와 물과 곡식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다. 인간 모두의 것이다. 아니 생명체 모두의 것이다. 공기와 물과 곡식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이다.
쉽게 말해 면역은 나의 힘을 키우는 것이고 적응은 대책(對策)을 세우는 것이다. 우선 나의 힘을 키워야 한다. 대책을 세울 수 있는 나의 힘을 키워야 한다. 힘이 없는 대책은 무의미(無意味)하기 때문이다. 힘이 뒷받침 되지 않는 대책은 공허(空虛)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힘이 있어 보아라. 누가 우리를 얕보겠는가? 우리의 국력(國力)이 넘쳐보아라. 어느 나라가 시비를 걸겠는가? 국력을 비축(備蓄)하고 단합된 국방의지를 천명(闡明)해야 한다.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힘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나라의 생존을 우선해야 한다. 나라가 없으면 처자는 노예(奴隸)가 된다는 사실을 직시(直視)해야 한다.
이스라엘을 보라. 우리와 같이 출발했다. 그런데 어떠한가? 그들은 사막땅 키브츠 농장에서 시작했다. 적성국(敵性國)에 둘러쌓여 싸우면서 일했다. 일치단결(一致團結)했고 차별(差別)이 없었다. 차별 없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쳤다. 그리고 그들을 기리는 것은 작은 묘판(墓版) 하나뿐이었다. 장군 묘가 따로 있고 사병 묘가 따로 있지 않았다.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 우리에겐 의병(義兵)이 있었다. 우리는 그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