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이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어쩌면 미국에서 부통령을 역임한 엘 고어(AL Gore)였을는지도 모른다. 2000년 대통령선거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신 그는 2006년에 그가 평생을 연구하고 주장해 왔던 지구환경문제에 대한 책을 출판하였다. 이때 그 책의 제호를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이라 명명하였다. 그의 논지는 간단하다. 사람들은 알고 있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는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원인은 인간이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듣기 거북하고 믿어지지 않지만 이것은 진실이라고 설파한다. 불편한 진실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는 다른 책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아무 누구도 그런 처참한 전쟁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전쟁은 이미 서서히 불길을 지피고 있었던 것을 상기해 보라고 한다.
영국의 네빌 챔버렌수상이 1938년 뮌헨협정을 통해 유화 정책을 쓰는 순간부터“마시지 않으면 안 될 쓴잔”은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던 것처럼 지구 환경에 무관심했던 것에 보복을 받기 시작했다고 역설한다. 이것이 바로“불편한 진실”임을 깨달으라는 메시지를 그는 끊임없이 모든 인류에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불편한 진실이 우리에게는 부지기수로 있는 것 같아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아무도 말하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염연히 조재한다.
그 첫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이 한국의 지정학적인 위치가 모든 태평양연안 국가간 이해관계의 핵심적 중심축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미관계나 한·일 관계나 한·중 관계를 보아도 그렇다.
한·미관계는 여간 튼튼하지 않다. 굳건한 동맹관계를 너머 혈맹관계로까지 발전하였다. 그러나 지도를 놓고 보면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미국에 있어 한국의 위치는 일본에 비해 한발 물러서 있는 형국이다.
과거 6.25 직전인 1950년 1월에 미 국무장관인 애치슨(Acheson)이 동북아 지역에 대한 방위선으로 발표한 소위“애치슨 라인”라는 것도 일본을 거점으로 하여 한국을 방위선 밖으로 밀어 내놓고 있었다. 그것이 6.25를 촉발시킨 한 원인이었던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행사를 부추기면서 일본을 동북아 안 보의 한 축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을 보면 미국에게 있어 일본의 위치는 가히 절대적이라고 할 수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서 한국은 일본에 뒤처져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야 말로 아무도 말하려고 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이다.
한·일관계가 매끄럽지 않을 때에 미국이 불편한 감정을 내비치는 대상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한·일 관계에 있어 불편한 진실은 또 무엇인가? 현실적으로나 당위론적 차원에서 한일 관계는 돈독한 우의(友誼)와 협력적 동반자관계가 형성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양국의국익을 위한 최선의 길이다. 그러나 이를 가로 막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역사의 DNA다. 일본 지도층이 가지고 있는 뿌리 깊은 정한론(征韓論)사상이 그들의 DNA로 자리 잡아 시도 때도 없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본다. 이것 또한 틀림없는 불편한 진실이다.
단적인 예로 대한민국의 실효적 지배영토는 남한만에 국한됨으로 북한에 일본자위대가 들어 가는 것은 일본의 자유라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라 할 것이다. 일본의 이런 DNA 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일본의 정신적 버팀목으로 숨을 이어가고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일본 열도가 지각변동이나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을 적마다 일본이 넘보고 싶은 곳은 모든 자 연적 재해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한국이 그 대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마찬가지의 DNA가 있다. 친일파(親日派) 혐오사상이다. 지금도 민족문제연구소 같은 데에서는 누구는 친일파의 후손이라면서 비난하기를 일삼고 있다. 이 경우 그 대상 인 물이 정치인일 경우에는 가히 치명적이다. 역사교과서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도 야당에서는 국정교과서로의 전환은 친일을 미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맹비난한다. 친일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자랑하려고 하는 것일까? 친일파를 들먹이는 사람이야말로 친일분자들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친일한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를 좋아할 사람은 일본인들일 것이기 때 문이다. 왜정시대에 친일을 한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있었겠는가? 한줌꺼리도 안 되는 친일 분자들을 그 토록이나 발굴하려고 하는 속내는 무엇일까가 자못 궁금하여서다. 친일분자 에 비하면 애국지사나 항일지사는 그 수 만 배도 더 넘을 것이다. 이들 지사를 찾아 선양하 는 작업이 더욱 값질 뿐만 아니라 친일파를 배격하는 데에 앞장 서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각설하고 한·중 관계에는 왜 불편한 진실이없겠는가? 한·중 관계는 어떤 다른 나라와 견 줄 수 없을 만큼 역사가 깊고 남다르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적대할 수 없는 현실성과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어쩐지 동맹관계로 발전해 나갈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 있 다. 중국이 우리를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로 인식하고 또 중화사상(中華思想)으로 무장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토문제에 있어서나 북한문제제 있어서도 중국과 우리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그럼 에도 미국은 걸핏하면“중국에 기댈래 일본과 손잡을래?”와 같은 눈짓으로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일본은 중국과 센카쿠(尖閣)열도 (중국명댜오위다오 釣魚島列島)문제로 영토분쟁의 당
사국이기 때문에 미국과 동맹관계만 끈끈하게 유지하면 큰 문제가 없다. 경제관계만 해결하 면 그만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과는 다른 입장일 수밖에 없다. 통일이라는 우리의 숙원사 업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혈맹관계다. 우리와는 선린관계가 될 수는 있어도 북한처럼 혈 맹관계로 까지 발전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이 우리를 대(對)일 내지 대(對)미 정책의 한 축으로 활용하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동맹관계를 맺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해관계가 다르고 체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통일 된 한국이 중국에도 도움 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중국이 이해하기까지는 상당시간이 소요되지 않을까 싶다.
주한미군의 존재와도 심대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2016년 새해다. 나라안 정치나 경제사정은 한마디로 시계(視界) 제로다. 민주적 지도력이 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대통령과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여당과 국가의식이나 역사의식은 물론 정책 마인드조차 없는 야당이 또 이 한 해를 이끌어 갈 것이다. 이 또한 불편한 진실이다. 하늘이 도와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