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奸臣)과 충신(忠臣)이란 말은 왕조시대(王朝時代)에 쓰던 말이다. 표현은 다르나 그 의미(意味)는 오늘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통용(通用)되지 않나 싶다. 오늘 우리 정치권(政治圈)을 돌아보라! 너무나 절실하지 않은가? 간(奸)은 의미요소로 여자의 뜻인 여(女)와 발음요소인 간(干)이 더해진 글자로 ‘범하다’의 뜻으로 쓰인다.
특히 ‘남녀 간의 도덕을 범하다’의 뜻으로 쓰여 ‘사특하다’, ‘부정하다’의 뜻도 나타내는데 ‘간사하다’의 뜻인 姦(간)과 통용되기도 한다. 신(臣)은 부릅뜬 눈의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로 본래 ‘똑똑한 신하’의 뜻인데 이후 그냥 ‘신하’의 뜻으로 쓰였다. 신하(臣下)는 ‘임금을 섬기어 벼슬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신하 가운데는 공신(功臣)과 충신이 있는가 하면 간신(奸臣)도 있다. 공신은 ‘나라에 공로가 있는 신하’를 말하고 충신은 ‘나라와 임금을 위해 충성(忠誠)을 다하는 신하’를 말한다. 그리고 간신은 ‘간사한 신하’로 임금이나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지 아니하고 개인이나 가문의 명예(名譽)와 영달(榮達)만을 위해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는 신하를 말한다.
물론 나라가 잘 되려면 충성을 다하는 충신이 많아야 한다. 그렇다고 충신이 제일인가? 그건 아니다. 충신 위에 양신(良臣)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양신이란 충(忠)을 넘어서는 신하를 말하는 것이다. 충을 초월(超越)해 임금을 바르게 받드는 신하를 말하는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반대인 경우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당태종(唐太宗)을 도와 ‘정관의 치[貞觀之治]’를 이룬 위징(魏徵)은 양신과 충신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양신은 살아서 좋은 이름을 얻는다. 군주는 숭고(崇高)한 칭호를 누리게 되고 그 공은 자손 대대로 전해져 부귀영화(富貴榮華)가 끝이 없다.
하지만 충신은 끝내 죽임을 당하고 군주는 악인(惡人)으로 평가 받는다. 집안과 나라는 모두 망하지만 그만 홀로 충신의 이름을 갖게 된다.” 이 얼마나 섬뜩한 말인가? 나라가 잘 되려면 양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양신이 있어 귀에 거슬리는 말도 서슴치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순자(荀子)는 신하의 길[臣道]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말한다. ‘1)명령을 따르고 군주를 이롭게 하는 길을 순(順)이라 한다. 현군(賢君) 아래 현신(賢臣)이 있는 이상적인 경우다. 2)명령을 거스르며 군주를 이롭게 하는 게 충(忠)이다. 무조건 따른다고 충성이 아니란 얘기다. 3)명령을 따르는데 군주를 이롭지 못하게 하면 첨(諂)이다.
군주의 잘못에 눈감는 것도 아첨인 거다. 4)명령을 거슬러 군주를 이롭지 못하게 하면 그건 찬(纂)이다. 이건 찬탈(簒奪) 즉 반역이니 설명이 필요 없다. 끝으로 5)군주의 명예나 치욕(恥辱) 그리고 나라의 흥망(興亡)엔 관심 없이 구차하게 영합해서 녹봉(祿俸)이나 받는 것을 5)국적(國賊)이라 한다.’
현군 아래 현신이 절대적으로 아쉬운 오늘이다. 하긴 권력자한테 바른 소리 하는 게 어디 그리 쉬운가. 작은 기업에서조차 사장 앞에서 ‘그게 아니고요’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통치권자인 대통령 앞에서야 어떠하겠는가. 그래서 간신인 줄도 모르고 간신이 되는 거다. 간신들이 있다면 모두 군주 책임인 게 그 때문이다.
순자는 또 말한다. “군주의 치욕을 막고 나라의 이익이 된다면 능히 군주의 명을 거역하고 필요하다면 군주의 권한까지 대신 행사하는 게 보필(輔弼)이다. 밝은 군주는 함께 하길 좋아하고 어두운 군주는 혼자 하길 좋아하며 밝은 군주는 이런 신하를 포상하고 어두운 군주는 처벌한다.”
권력자가 일부러 쓴소리 통로를 터놔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못한 군주 앞에서 신하들은 첨(諂) 아니면 찬(纂) 아니면 다섯째의 길[國賊]을 갈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간신 아닌 간신들로 넘쳐날 때 군주의 치욕은 말할 것도 없고 백성들의 잠자리가 편안할 수 없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오늘 우리의 정국(政局)이 어떻한가? 위정자(爲政者)들,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새겨들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