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도 부부-자녀들 사이에, 직장에서도 상사와 조직원 사이에, 그리고 정부와 국민 사이에, 서로 협력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거버넌스라고 한다. 국제적으로 최고의 거버넌스는 UN의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에는 유럽의 EU, 동남아의 ASEAN같은 국가연합 기구가 없다. 4대 강대국과 남북한, 몽골 등 세계의 가장 발전하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안보-경제협력기구가 없는 것이다.
그같은 국제협력기구가 없어서 가장 고통받는 나라가 한반도이다. 아마 한국에서 가장 절실한 정치는 한반도평화, 동아시아평화를 이런 국제기구를 만들어 추구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러나 국내 정치에서는 이런 일에 신경쓰는 일이 사치스런 일로 치부된다. 그저 남북이 물고뜯는 일이, 영호남이 다투는 일이, 여야가 극단적 대결을 벌이는 일이 정치로 여겨진다.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는 일이 새해 정치에 나타났으면 한다.
1. 동아시아 현황 2016년에 들어서면서 미국과 중국의 남중국해를 둘러싼 갈등, 일본과 중국의 동중국해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첨예한 대립은 동아시아정세의 불안정성을 크게 고조시키고 있다. 또 북한 핵무기의 비축과 고도화가 위험 수준에 도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지난 8년 동안 지속된 미국의 전략적 인내 혹은 방임정책이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지적이 확산되고 있다.
아베정권은 평화헌법 9조의 개헌을 공식화하고, 지난 9월에는 안보법제를 여권 단독으로 입법화함으로써 ‘1945년 평화체제’의 해체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주도 아래 미-일-한 3국의 안보동맹 확대가 진행되고 있으며, 지난 12월 한일 외무장관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문제 협상이 타결됨으로써 동맹 확대의 최대 난관을 제거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 내 여론과 위안부 피해자들의 반발 등으로 위안부협상은 계속 현안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미-일과 중국 사이의 긴장고조는 북핵 고도화 문제까지 곁들여져 한반도 긴장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 한-미-일 안보동맹의 강화는 중국과 북한을 자극하여 한반도 위기를 구조적으로 고착시킬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일본의 정계-시민사회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중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동아시아와 미국의 2016년 정치정세 2016년 동아시아의 첫 정치일정은 1월 16일에 있을 대만의 총통선거다. 민진당의 차이잉원이 국민당에게 승리했다. 국민당의 주리룬 후보를 밀었던 중국은 국민당의 三通정책을 변경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미국과 일본의 대중국 공세에 가세할 것인지 주시하고 있다. 차이잉원이 미국과 일본에 접근할 경우 동남지나해의 파고가 급격히 높아질 것이다.
아베정권은 해석개헌을 통한 안보법제의 입법화로 평화헌법 9조를 무력화시켰지만 일본 시민사회의 평화헌법 수호 투쟁과 반(反)아베 분위기도 점점 강화되고 있다. 평화헌법의 운명이 걸린 7월 참의원서거가 가까워질수록 일본의 여권과 야권-시민사회의 대립-논쟁은 열기가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도 2016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다. 청년실업 등 경제적 불황과 박근혜정부의 실정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으나, 야권 분열-경쟁으로 총선은 여당의 승리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민의와 배치되는 선거결과가 나올 경우, 수렴되지 못한 민의는 의외의 출구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높다.
북한의 제7차 노동당대회가 5월 초에 있을 예정이다. 김정은의 지도력이 확고해지고 핵과 경제의 병진정책을 계속하되 개방정책을 본격화할 것인지 주목된다. 4차 핵실험에 따른 국제제재를 벗어나기 위해 평화협정 공세와 6자회담의 복원을 위해 대미접근을 시도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2016년에 대선과 함께 하원 전체, 상원 일부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대결로 압축될 것으로 보이는데 승패의 예단은 어려운 상황이다. 힐러리 후보가 당선될 경우, 좀 더 유연한 대중국정책과 대북정책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아베-박근혜 축은 동아시아에 최악의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
3. 한국과 일본의 평화-민주주의 세력의 모색과 전망 광복과 종전 70년, 한일협정 체결 50년을 맞은 2015년에는 한국과 일본에서 다양한 행사들이 개최되었다. 10여 년째 계속된 일본평화헌법 9조 지키기 운동이 2013년부터 ‘노벨평화상 추천 서명운동’으로 발전했으며 2014년에는 한국에서도 진행되었다. 여기에는 2010년 한일합병 100주년에 있었던 과거사 인식 공유를 위한 한-일 지식인선언운동의 경험이 크게 기여하였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2015년 8월 12~14일 서울에서 열린 ‘2015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는 동아시아 평화문제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 회의에서 다음 세 가지 명제가 ‘동아시아평화 컨센서스'로 정리되었다.
1) 일본 평화헌법 9조는 동아시아평화의 근간이다. 일본 내에서는 2016년 참의원 선거 결과가 평화헌법 9조의 수호와 관련하여 매우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2) 한국전쟁의 종식 없이 동아시아 평화를 상상할 수 없다. 미국, 중국, 남북한 등 4개 주요 교전당사국은 휴전상태의 한국전쟁을 끝내고 현재의 정전협정을 항구적인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협상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3) 동아시아 ‘핵 안전’과 한반도 비핵화는 핵 없는 세계로 가는 지름길이다. 일본, 중국과 대만, 한국 연안에서 가동 중이거나 건설예정인 원전의 공동안전대책 마련을 위해 이 나라들 사이의 협력이 매우 절실하고 시급하다.
‘2015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에서 도출된 컨센서스의 실현을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주제들에 대한 심화된 논의와 함께 구체적 실천방안들이 강구되어야 한다.
1)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내각총리가 기조연설에서 제안한 ‘동아시아 평화회의’의 논의를 구체화하고 그 실질적 준비에 착수해야 한다. 2) 한국전쟁의 종식을 위해 현재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국제적 논의마당이 마련되어야 한다. 3) 일본 시민사회와 야권의 관심사인 ‘안보법제’에 대한 국제 토론회를 준비한다. 4) 한국, 일본, 중국의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동아시아 핵 안전문제 협의를 위한 전문가 실무회의’를 제안, 추진한다. 5) 2016년 5월 22~24일 한국의 제주도에서 이상의 주제를 논의하는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를 추진하며, 이 회의에 북한의 참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