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 앞을 지나다 보면 공적비(功績碑)나 공덕비(功德碑)를 볼 수 있다. 그런데 공적비은 무엇이고 공덕비는 무엇인가? 아리송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구분이 잘 안가기 때문이다. 두 말[言]에는 모두 공(功)이라는 뜻글이 들어 있다.
功은 공로(功勞)와 공력(功力)의 준말이다. 공로는 어떤 일에 이바지한 공적과 노력(努力)을 뜻하는 것이고 공력은 애써 들인 힘을 뜻하는 것이다. 功은 정성(精誠)을 다하는 것이다. 정성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다. 허투루 하는 것이 아니다. 성심(誠心)을 다해 힘을 쏟는 것이다. 그래서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고사(古事)가 생겨난 것이다.
적(積)은 쌓아 올리는 것이다. 무엇을 쌓아 올리는가? 선(善)을 쌓아 올리는 것이다. 선업(善業)을 쌓아 올리는 것이다. 선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이다. 적선(積善)하는 것이다. 덕(德)은 베푸는 것이다. 德은 베푸는 것의 다른 이름이다. 덕은 베풀고 배려(配慮)하고 도와주는 것이다. 덕은 베풀 때 빛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적(積)은 없는 것을 쌓는 것이고 덕(德)은 있는 것을 베푸는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나라와 사회를 위해 헌신(獻身)한 애국지사(愛國志士)들의 공을 기리는 것이 바로 공적비이다. 그리고 선정(善政)으로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했거나 중생제도(重生濟度)에 몸바친 이들의 덕을 기리는 것이 공덕비이다.
일반적으로 공적(功績)을 이루면 상을 받는다. 공을 쌓으면 상을 받는다. 공덕(功德)은 아니다. 공덕은 상을 받는 게 아니라 칭송(稱頌)을 듣는다. 공덕을 칭송하는 것이다. 공덕을 칭찬하여 기리는 것이다. 그것이 공덕비다. 물론 공직(公職)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 공적을 세울 수 있다. 그리고 정사(政事)를 잘 다스려 칭찬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자화자찬(自畵自讚)일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시골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송덕비(頌德碑)가 바로 그것이다. 관리(官吏)가 그 직을 떠날 때 백성(百姓)들이 그 공로를 기려 세워주는 것이 공덕비이다. 그런데 그 공덕비가 어떠했는가?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살아서 공덕비를 세웠다. 일본은 아니다. 일본은 죽어서 공덕비가 섰다. 일본엔 직소(直訴) 제도가 있었다. 소(訴)를 발하면 소를 올린 사람과 소를 받은 사람을 동시에 불러 세웠다. 그리고 소원 수리를 다 해준 다음 두 사람을 모두 처형(處刑)했다. 소를 올리려면 목을 걸어야 했던 것이다. 마을 공동체를 위해 목을 걸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공덕비를 세워줬던 것이다.
우리는 어떠했는가? 우리는 원님이 떠나면 공과에 구애(拘礙)됨이 없이 공덕비를 세웠다. 거기서 진 것이다. 일본에선 무고죄(誣告罪)라는 것이 없었다. 거짓으로 남을 헐뜯으려면 자신의 목을 내놔야 했기 때문이다.
옛날만 그런 게 아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왜 이토록 무고가 많은가? 아니 무고를 밥먹듯이 하는가? 물론 거짓으로 남을 헐뜯지 말아야 한다. 그게 우선이다. 그게 다가 아니다. 왜 무고죄에 대해서 그렇게 관대(寬大)한가? 우리가 법(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제도(制度)가 모자라는 것도 아니다. 법집행(法執行)이 철저히 이행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법은 엄중(嚴重)해야 한다. 엄중히 집행되어야 한다. 늑대 소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늑대 소년의 이야기에 길들여져서는 안 된다. 공권력(公權力)의 엄함을 보여야 한다. 누가 우리 사회를 지켜주는가? 법이 지켜주는 것이다. 공권력이 지켜주는 것이다.
우리는 행사 때 순국선열(殉國先烈)에 대한 묵념(黙念)을 한다. 물론 묵념도 해야 한다. 묵념만 해서는 안 된다. 행(行)이 뒤따라야 한다. 그들의 공적을 기리고 공덕을 추모(追慕)하는 행사로 끝나서는 안 된다. 실질적으로 그들을 도와야 한다. 그들의 후손(後孫)을 도와야 한다. 지금 그들의 후손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그들의 궁핍(窮乏)한 삶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제도가 있다. 운용(運用)이 문제다. 일에는 경중(輕重)이 있고 우선순위(優先順位)가 있는 법이다. 무엇이 급하고 무엇이 우선해야 하는지를 잘 살펴서 행해주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