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는 포천으로 발령 받는 공직자들이 굶어 죽지 않고 임기를 채우면 다행이라고 했다 한다.
“요놈! 가평으로 보낼까? 양평, 연천으로 보낼까? 그래도 그동안 작은 공이라도 세웠으니 포천으로 발령을내--!”
왜정 때 부조리(不條理) 에 연루된 공직자를 좌천(左遷) 시킬 때 경기도 인사권자들이 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일제시대(1920~1945) 경기도는 ‘경성’, ‘인천’, ‘개성’ 3개 시와 기타 군으로 행정 구역이 나뉘었는데 좌천하는 2평 2천 (가평, 양평, 연천, 포천) 은 맨 끝에 속하는 고장이었다.
그래서 공작자 들이 포천으로 발령을 받으면 부임 즉시, 휴가를 내고 전근 운동을 하느라 뛰다닌다고 한다. 그러니 부조리를 저지를 겨를이나 있었겠는가? 그래서 포천 고향 출신 공직자 들이 공직에 재임하는 예가 많았다. 8.15해방 당시 첫째 부조리 공직자가 탄생 했다. 신문 배달부 출신 군청 공무원이 회계를 맡으면서 회계 규법을 몰라 감사시 부조리 공무원으로 구속된 사건이다. (1945.7)
“제가 초등학교 출시인데 무얼 알겠습니까? 시키는 대로 했는데 제가 부정공무원(不正公務員) 이라뇨?”
그는 구속 송치 되어 3년 형을 받고 복역 후, 출소했다.
N0.2 가 창수면장 아들이다(1946.8) 포천면 경리 책임자(재무담임) 인데 최신형 일제 자전거를 타고 세련된 양복을 입고 다니는 것이 의심이 되어 조사 끝에 구속 부정공무원이 되었다. 1945년~1950년 공직자의 월급은 쌀 한가마도 안 되는 불상한 신세였으니 조금만 잘 살아도 금방 부정 공무원으로 의심 받는 처지가 되었으니 물려받은 재산이나 집안에서 농사를 짓지 않고는 굶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경찰서장은 예외여서 ‘서장 집 개는 매일 고깃국을 먹는다’ 는 소문이 났다 그도 그럴것이 말만한 개를 2마리나 서장 관사에서 기르고 제주도산 말을 수입하여 매일 같이 서장 부자(署長父子)가 타고 다녔다.
절약하고 부지런한 공직자도 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군청, 면사무소, 학교 공지(空地)를 농지로 개간 채소와 밭의 곡식을 가꾸었으며 숙직실에다 누에를 쳐서 후생사업을 해서 공직자들은 살려고 애썼다.
그래서 포천 출신 초등학교 학력의사환(급사, 고용원) 들이 충실히 공무수행을 연수(硏修) 하여 승진에 승진을 거듭한 끝에 부군수(지방서기관) 까지 승차한 공무원도 있고 과장 부장, 군수까지 승차(승진) 하였으니 포천에는 입지전적(立志傳的) 인물이 공직에 많았다. 요즈음, 지자체 제도 이후, 국장급 부정공무원이나 기관장이 많아진 것은 웬일일까?
포천 사람의 정신과 애향 사상이 부족한 탓일까? 공직자 인성교육(人性敎育)의 교육 강좌라도 상설(常說)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