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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 이야기] ‘애총’과 ‘비석’, ‘기념공원’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6년 01월 04일
 
↑↑ 현운 김창종 수필가
ⓒ (주)포천신문사 
옛부터 마을 마다 3가지 유물이 존재했다. ‘성황당’, ‘신장’, ‘애총’이었으며 관을 주도로 하는 선비들의 유물로는 ‘송덕비’, ‘영생불망비’, ‘선정비’등이 있어 왔으며, 2품 이상의 벼슬치의 묘가 있는 마을은 ‘신도비’가 명인의 묘가 있음을 알렸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최고는 ‘충신·효자’각이었다. (또 열녀꾼도 이에 속한다) ‘충신각’이나 ‘효자·열녀문’문을 나라에서 하사받으면 후손들이 10대까지도 과거를 보지 않고도 벼슬을 했으니 말이다.

‘애총’은 어린 아기의 무덤으로 마을 이부에 만들어졌는데 돌무덤으로 되어 있었다. ‘상황당’은 마을의 수호신이지만 ‘애총’, ‘말무덤’은 사랑의 ‘울음터’였다. 사랑하는 자녀가 죽으면 옷 입은 채로 짚이나 옷으로 싸서 동구밖에다 내다가 돌무덤으로 만들었는데 아녀자들은 애총을 지날 때는 의례히 들려서 맺힌 한(恨)을 푸는 길고도 긴 울음을 리듬있게 터트리는 것을 칠자는 여러번 보아왔다. ‘말무덤’은 모시던 주신의 무덤 근처에 묘로 만들었는데 ‘어링굴’ 말무데미가 있다.

가정 마다 보통 7~8명의 자녀를 낳아 길렀는데 기피울 허씨네 막내가 군청에 다니며 8남이(八男)이란 별명을 들었다. 겉뫼 큰댁 8남매도 셋만 기르고 다섯은 죽었으니 다산(多産)의 이유(理由)를 알만했다.

축석령을 넘어 의정부 입구 냇가에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과 몇 개 있는데 양주시 목사, 포천 현감의 ‘송덕비’다. 또 자작동 느티나무 밑을 ‘비석거리’라고 했는데 포천 현청이 서면(포천동 : 포천면)에 있을 때 송덕비(현감)를 세운 비석 거리였다.

어느 못 된 현감은 현직에 있으면서 자기의 송덕비를 세우게 했다니 웃기는 일이기도 하다. 내촌면 6·25참전 용사비, Tow-y고개 육군병장비등도 이색적이고 뜻깊다. 포천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교사 송덕비나 학교 뒤 언덕에 있는 6·25 당시 반공투쟁을 하다 사망한 최학규선생 묘비도 은사 존경의 뜻이 담겨 있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청백리 윤이섭 대감, 양사언 선생 동상, 유응부 선생 동상, 3·1만세운동 소흘읍 열사의 기념비나 동상도 없는 내 공향 포천이고 보니 무슨 명인의 고장이라 큰 소리 칠 수 있는가?

박물관을 짓는다면 박물관 뜰에다 세울 영세불망의 명인들이 누구 보다 많은 곳이 내 고향 포천이다. ‘양사언 시문화 축제’, ‘양사언 기념관 건립 및 동상 설립’, ‘유응부’충신 동상 및 기념관 건립…….

너무 할 일이 많다.

현운 김창종 / 수필가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6년 01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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