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군사독재와 싸우며 민주화 운동을 할 때 동지들은 양김씨를 선생님이라고 존칭하여 부른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독재 타도를 부르짖으면 많은 사람이 수긍했다. 우리들은 "우리가 하는 이 일이 정의다" 하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간판을 걸고 떳떳하게 투쟁했다. 얼굴을 가릴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복면을 하고 쇠파이프로 부수고 전경을 팬다. 복면을 한다는 것은 떳떳지 못하다는 증거이다.
그런 사람들이 현 정부를 박근혜 독재라고 부르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오히려 폭도들을 강력하게 진압하지 못하는 박근혜 정부에 화가 나고 동정하게 된다. 김영삼 대통령의 정권초 실세그룹의 한 명이던 K모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선생님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개혁 작업에 내 모든 정치생명을 던졌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 고 말하며 자기 일처럼 열심히 일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음침하고 무서웠던 안가(安家)를 포크레인으로 부수고 철거하며, 일제 잔재였던 중앙청을 없애고, 군 사조직인 하나회를 해체하고, 공직자들의 재산 공개, 금융실명제 실시 등의 개혁을 숨 가쁘게 속 시원히 실시할 때도 기득권층의 저항은 거세었었다.
김영삼 정부의 실세들의 "너 이거 받을 테냐, 나하고 같이 죽을 테냐" 하면서 다그치는 결의에 찬 결기가 있어 이를 돌파할 수 있었다.
김대중 정권 초기의 정권 실세의 한 사람은 민주화운동 동지들이나 학자들을 만나 대화하다가도 국정운영에 참고가 될만한 이야기가 나오면 얼른 수첩을 꺼내 메모하는 실세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정책에 반영시키며 "선생님 일은 내 일이다"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을 내 일처럼 도왔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그 측근들이, 노정권에 대해서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하거나, 자기들의 생각과 다른 논리를 말하면 그들은 '수구꼴통'이라며 아예 말을 못하게 막으며 대거리를 하면서 접촉을 끊고 그들만의 개혁 타령을 하면서 깔아뭉개려 들었었다. 그래서 민심은 더 멀어져 갔고, 그들과 국민과의 대화는 막혀져 갔지만, 그들의 결속력만은 단단히 굳어져 갔다. 문재인 대표의 현 상황을 보면 지금도 그 결속력은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현 박근혜 정권은 어떠한가. 국민들이 뭐라 하는지 의견을 널리 구하는 사람도 없고, 의견을 듣고 메모하면서 정책에 반영하는 사람도 없고, 의견이 다르다고 윽박지르는 사람도 없다.
야당이 지리멸렬하고 분열하니까 가만히 앉아서 반사적 이익에 취해있다. 광화문 사거리가 민노총의 총파업 투쟁과, 국민이 선택한 박근혜 정권 타도를 외쳐도, 쇠 파이프로 공권력을 패고 부숴, 폭동으로 마비된 사회질서를 보면서도 여권에서는 나서는 사람을 보지 못 했다.
박근혜 정권의 경제살리기에 필요한 법안의 통과는 야당의 비협조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내일처럼 나서서 희생하려는 사람이 없다. 박근혜 정부 사람들이 유난히 충성심과 응집력, 희생정신이 없어 보이는 것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들처럼 지역이나 이념 기반과 오랜 동지와 가신 그룹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 중인 경제살리기 정책이 성공하려면 법안 통과에서 집행에 이르기까지 무한책임을 지고 자신을 희생시켜 박근혜 정부를 도울 국정책임세력을 만들었으면 어떨까 생각된다.
그 방법의 첫째는 측근에 매달리지 말고 인연, 계파, 당적 등의 모든 것을 초월하여 최고의 능력과 실력을 갖춘 인물들을 영입하여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1930년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주의자였던 해리 홉킨스를 특별보좌관으로 영입하였고, 야당인 공화당에서 해럴드 이크스를 내무장관으로 임명해 뉴딜정책의 기획과 집행을 맡겼었다. 그래서 성공했다.
둘째, 대통령이 직접 공무원들에게 이것저것을 명령하지 말고 최강의 멤버들이 직접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다.
셋째, 견해가 다른 사람들과도 자주 만나 대화함으로서 가부상제(可否相濟) 하여 중요 정책에 대한 반대를 중립으로, 중립을 지지자로 바꿔내는 적극적인 대화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이것이 박근혜 정부의 성공의 필수조건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