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土亭)은 1517년(중종 12년)부터 1587년(선조 11년)까지 62세를 사는 동안 서울, 마포, 강변에서 흙으로 정자를 짓고 살았다. 그래서 님의 호도 토정이라 하였다.
내 고향 포천의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전라도 만경현(지금의 만경평야)에 있는 양초주와 황해도 충천부에 있는 초도정을 빌려 농사도 짓고 고기도 잡아먹고 살게 하고, 염전을 일궈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임금께 상소를 올렸으나 실패하고 포천 현감직을 사임한다.
서면(포천) 식북, 군내, 소흘, 가산, 내촌 화현까지 6개면이 포천 땅이었으니 반민 구제미인 긍휼미 300섬을 풀어도 굶어 죽는 현민이 많았던 포천이다.
특히, 현감 재직시 임진강(한탄강, 영편천, 포천천)의 범람하여 많은 백성들을 구제한 사실은 역사에 기록되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아산 현감 시절에는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관내 노숙자들을 수용하고 그들에게 일감을 주고 일을 가르치고 빈민 구제에 힘쓰다가 그곳에서 별세했다.
대부분 서울 마포 갯가에서 살았으며 걸인들과 함께 살았다. 성리학의 대가 조식 선생은 마포 사는 토정을 찾아와 토정을 도연명(陶淵明)에 비유하는 얘기를 남겼다. 그 밖에도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존경 받는 인물로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문간공(文簡公)의 시호까지 하사 받았으니 선비의 영광도 누린 샘이다. 또, 아산의 인간서원과 보은의 화암서원에 배향되는 영광도 얻었다.
더욱 놀라운 바는 토정비결이란 예언서를 저술하여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굳건히 소망을 가지고 살 것을 저서를 통해 암시하고 있다. 토정비결은 세계석학들의 상아탑인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교양교재로 채택되어 애독되고 있으며 ‘농아집’, ‘토정집’도 경주부윤 이정익에 의해 간행되었는데 미국 학계의 애독되는 저서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한다.
더욱 놀라운 바는 한국 도교에서 추앙받는 신선(神仙)의 반열(班列)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참고로 도교에서 추앙 받는 신선은 최치원, 도선국사, 남사고, 서경덕, 양사언, 토정 이지함 등인데 기적(奇籍)이나 이적(異蹟)을 남기고 예언으로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영감을 준 인물들이다.
내 고향 포천은 아직도 담세 능력이 부족한 하위권 생활지역에 속한다. 도정 선생의 간절한 소망대로 포천시장은 잘 살고 살고파하는 고을로 만드는데 힘써야 한다. 지하자원(금, 형석, 수정, 문모)의 개발이나 민물고기 양식장, 태봉왕국의 유적의 개발(보장산, 명성산 등) 고구려 남방 13성의 하나인 고모루성(고모리성)의 관광 자원화, 조선 왕가의 사냥터의 재개발(왕방산 평양벌) 서원의 원형 복구로 UNESCO세계 문화유산 등재 신청, 5·6군단 주둔지의 군주둔지 특성 관광지 조성(사격장 모의 군사훈련 체험장) 38선 산정호수의 관광지화(김일성 별장, 38선 유적), 크낙새 서식지 보호와 관광자원화 등이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토정이 하늘에서 내려다 보고 기배하게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