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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김항진의 미술여행] “빨간색은 누구를 위하여 무엇 때문에 칠해지는 색인가?”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5년 11월 29일
 
↑↑ 김항진 상명대 겸임교수
ⓒ (주)포천신문사 
지난 시간 우리는 모더니즘을 통해 이제 서구 사회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변화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모더니즘의 정신이 미술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파급되어 나가게 되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에 살펴보게 될 현대미술 키워드는 “미술의 자율성”입니다. 앞선 시간 몇 번이나 반복된 이야기이지만 모더니즘 이전의 미술은 사실주의 미학을 바탕으로 이루어 왔으며 미술에서 조형언어의 임무는 오로지 현실 내지 자연을 충실히 재현하라는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사물의 재현을 위한 종속적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빨간색은 무엇입니까? 회화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빨간색은 중·고등학교 때 미술시간에 배운 기본 3색 중 하나이며 붉은 장미와 와인을 떠올리게 하며 화가들에게 석양의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표현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색입니다. 물론 빨간색의 용도는 이 외에도 너무나 많습니다. 어쨌든 빨간색의 할 일은 엄청 많다는 것은 누구나 당연하게 인정하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확고한 미술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바로 모더니스트(Modernist)들입니다. 모더니즘(Modernism) 화가들은 빨간색을 더 이상 장미나 노을을 표현하기 위한 존재가 아닌 그 자체의 존재로 해방시킵니다. 빨간색은 빨간색 자체일 뿐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색깔이 아닌 것입니다.

↑↑ (앞 그림부터) 앙리 마티스, 모자를 쓴 여인, 1905 루벤스, 밀짚모자의 여인, 1625,
ⓒ (주)포천신문사

인상파가 등장한 이후 화가들에게 색채는 일상 세계를 모방하기 위한 재료가 아닌 회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미술의 조형언어는 사실을 재현하기 위한 요소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것들이고 그들 스스로 이야기하고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인식하였습니다. 그럼 그 이전에 화가나 조각가들에게는 조형적 자유가 없었을까요? 물론 아니겠죠. 예술가들의 감성에 자유로움이 흐르지 않을 리가 없었겠죠. 다만 예술의 자유는 사실적인 형태와 대상을 통해 표현되었고 미술의 조형언어는 전적으로 대상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그림을 비교해 볼까요? 위의 도판은 피카소와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손꼽히는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초상화와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초상화입니다. 참고로 ‘밀짚모자 쓴 여인’이라는 제목을 가진 루벤스가 그린 초상화의 원래 제목은 프랑스어로 'Le Chapeau de Paille'입니다. 직역하면 ‘밀짚모자’인데 그림속의 여인이 쓰고 있는 모자는 밀짚모자가 아닌 그 당시 여인 초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인 펠트모자(Felt Hat)인 것으로 보아 밀집을 뜻하는 paille라는 단어는 아마도 프랑스어로 털을 의미하는 poil이 오기된 것으로 보입니다.

두 그림을 비교해 볼 때 어느 그림이 더 마음에 드십니까? 지금은 그다지 충격적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옆의 루벤스가 그린 그림과 같은 곱게 정리된 작품들에 익숙하던 당시 사람들에게 마티스의 그림은 충격적이고 흉측하게 느껴질 만하겠다고 생각이 들긴 합니다. 두 작품 모두 인물이란 사실적 대상을 묘사한 초상화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표현방법과 결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먼저 루벤스의 그림을 볼까요. 우선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수줍은 듯 미소 짓는 표정에서 여인의 아름다움이 감출 듯 보일 듯 매력을 발산하고 있고 모자를 비롯한 액세서리와 의상 그리고 전체적인 포즈와 구성이 조화를 이루면서 그녀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면 마티스가 그린 초상화는 어떤가요? 마티스의 초상화 역시 여인이란 대상을 재현하고 있는 점에서 루벤스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루벤스 초상화의 주인공인 스잔나 푸르망(Susanna Fourment)에 비하면 전혀 조화롭지 못합니다.

이에 반면 마티스의 여인에 칠해진 색들은 그야말로 제멋대로입니다. 색을 쓸 줄 모르는 어린아이가 스케치 위에 마음 내키는 대로 분칠한 느낌이랄까 비록 정숙한 복장과 자세는 루벤스의 초상화와 비슷하지만 여인을 감싸고 있는 색들은 제 각각 쌩뚱 맞기만 합니다. 혹시 그림 속의 주인공은 정말 실제로 이런 색으로 분장한 것인가요? 아님 마티스는 색을 쓸 줄 모르는 색맹화가였을까요?

물론 그럴 리는 없었겠지만 이 그림은 너무나 거칠고 무질서한 색으로 뒤범벅이 된 기본이 안 된 그림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당시의 비평가들에게 받은 수많은 욕설들 중에 하나가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동물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포브(Fauves)'라는 별명이었고 이 별명은 마티스와 함께 강렬한 색채와 붓터치로 미술계의 변혁을 꿈꾼 일련의 젊은 작가들의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 “야수파(Fauvism)"가 됩니다. <이어서 계속>

김항진 / 상명대 겸임교수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5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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