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하의 대한민국에서 민주화운동을 이끌고, 1992년에 대통령에 당선돼 ‘문민정권’을 부활시킨 김영삼 前 대통령이 22일 오전 0시 22분, 향년 88세의 나이로 서울대 병원에서 서거했다.
김영삼 前 대통령이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 서거한 서울대병원의 오병희 원장은 이날 새벽 병원 본관 앞 대한의원 대회의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현재로서 사망에 이른 직접적 원인은 허약한 전신 상태에서 패혈증과 급성 심부전이 겹친 것"이라고 밝혔다.
오 원장은 "고인께서는 과거 반복적인 뇌졸중과 협심증 및 폐렴 등으로 수차례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으며, 2013년 4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반신불수를 동반한 중증 뇌졸중과 폐렴으로 입원한 바 있다"며 "지난 19일 고열로 입원한 고인은 상태가 악화돼 21일 오후 중환자실로 이송해 치료를 했으나 상태가 악화돼 서거했다"고 덧붙였다.
김영삼 前 대통령은 故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야당 지도자로서 대한민국 민주화의 진전에 공헌한 한편, 예전의 ‘정적’과도 손을 잡고 정권을 잡았다는 혹평도 받았다. 27살이던 1954년 3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된 그는 9선 의원을 거쳐 1992년 12월 대선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했다.
1993년 취임하자마자 군부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했다. 당시 하룻밤새 떨어진 별이 50개였다고 한다. 또한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고 ‘역사 바로세우기’ 의 일환으로 전두환 노태우 등 전직 대통령을 줄줄이 감옥으로 보냈다. 이와 함께 ‘국민학교’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고, ‘쇠말뚝 뽑기·구조선총독부 철거’와 같은 일제 강점기 잔재 청산 작업이 김영삼 대통령의 지휘 하에 이뤄졌다.
당시 일본정부에서 조선총독부를 일본으로 옮기기를 희망했지만, 김영삼 前 대통령은 바로 다음날 폭파를 지시했다고 전해진다. 일본 정계 지도자들이 현재처럼 일제 강점과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정당화하는 망언을 하면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독도에 선박 접안시설을 건설해 실효지배를 강화한 것도 이때다.
한편 기자가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던 1995년 3월에는 와세다대학을 방문해 오오쿠마 강당에서 졸업축사를 하는 등 김영삼 前 대통령은 기자와의 인연도 깊다. 2002년부터 5년 동안은 일본 와세다 대학 특명교수 자격으로 정기적으로 일본을 방문해 한일관계와 북한문제 등에 대해 특강을 하기도 했다.
또한 기자가 박사과정을 졸업했던 해에는 일본국립 히토츠바시대학을 방문해 축사를 해주었다. 사실 히토츠바시대학은 상학, 경제, 법학, 사회 등 불과 4개학과 밖에 없는 아주 조그마한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알고 왔는지 동 대학을 “아시아의 하버드”라며 극찬해준 대목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김영삼 이데올로기’를 쓴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김영삼을 키워준 것은 언론이다. 언론의 권력에 대한 ‘탐욕’과 김영삼에 대한 ‘의리’는 그의 자질을 은폐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비판할 정도로 그의 언론인 환대는 유명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기자가 되어, 김영삼 前 대통령의 상도동 저택을 두 번 방문했다.
첫 번째는 1994년 7월에 북한 김일성 주석과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지만 회담 직전에 김일성의 사망으로 회담이 실현되지 못한 것에 대해, 두 번째는 ‘북한의 핵문제’ 때 김영삼 정부의 역할에 대한 취재를 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재임기간 중 이루지 못한 과업으로서 남북정상회담의 실현을 목전에 두고 무산된 일과 “김대중은 숨 쉬는 것 빼고는 전부 거짓말”이라는 말을 남기긴 했지만, 2009년 8월에는 병세가 위중한 김대중 前 대통령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방문해 극적으로 화해하기도 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선 ‘독재자의 딸’ 이란 쓴 소리를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으로 역사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소신을 밝혔다. 2011년 2월에는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퇴진에 대해 성명을 내면서 “사랑하는 조국에 군사쿠데타라는 죄악의 씨를 뿌린 원흉이 바로 박정희 육군 소장”이라며 “이후 32년 동안 군사정권이 이 나라를 지배했고 독재자 박정희는 18년간 장기 집권하며 국민을 탄압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며 고령에도 배드민턴과 등산을 즐겼다. 특히 재야시절 결성한 민주산악회는 끈끈한 동지적 유대감이 남달랐을 뿐만 아니라 든든한 정치적 자산이었다.
건강 체질이었던 그가 2013년 4월 가벼운 감기 증세로 입원한 이후로는 상태가 악화돼 중환자실에서 한 달가량 폐렴 집중치료를 받은 뒤 일반 병실에서 머물고 있었다. 허약한 전신 상태에서 패혈증과 급성 심부전이 겹쳐 오늘 새벽 서거했다.
김영삼 前 대통령은 평생을 떳떳하게 살았다. 그가 상도동 저택의 거실에 걸어 둔 친필 휘호처럼 “호연지기”의 삶을 살았다. 호연지기는 떳떳함에서 오는 용기다. 수많았던 말실수와 직설적인 정치언어에도 불구하고 그를 빼고는 대한민국의 현대정치사를 논할 수 없듯, 그만의 “올바름”이 그에게 ‘결단의 정치인’, ‘소신과 용기의 지도자’라는 떳떳함을 주었을 것이다.
떳떳함은 마음이 속삭이는 '올바름(義)'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얻을 수 있다. 올바름에 대한 믿음이 강해지면, 그 믿음은 자연스럽게 행동을 동반할 것이다. 올바름을 실천한 경험은 올바름에 대한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할 것이고, 그렇게 더 크고 단단해진 마음은 더욱 분명한 실천을 동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