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문화원(원장 양윤택)은 20일 오후2시 문화원 3층 대강당에서 ‘2015년도 학술연구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표회는 김성근 교육장, 고남식 대진대학교 인문학연구소장을 비롯한 각급 기관단체장 및 내빈을 비롯해 문화원 임․회원, 관내 유림 및 지도층 인사, 관계 문중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이날 학술연구발표회는 ‘포천을 빛낸 인물 연구’를 주제로 대진대 박윤선 교수의 ‘포천현감 이지함 선생’ 박진태 교수의 ‘창주 이성길 선생의 문학과 인간관’, 강남대학교 홍순석 교수의 ‘감호 양만고 선생의 생애와 저술’ 등 사학계의 저명한 3명의 교수가 참여해 집중 연구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다.
대진대 박윤선 교수는 이지함이 당대 민중들에게 ‘인기인’이었다고 말한다. 이지함은 서경덕(徐敬德)의 문하에서 공부해 경사자전(經史子傳)에 통달했고, 스승의 영향을 받아 역학·의학·수학·천문·지리에도 해박했다.
그는 한산 이씨 명문가의 후손임에도 피지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위치에 섰다. 생애 대부분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백성들의 생활고를 목격하고 그 속에 뛰어 들어가 백성을 위한 대책을 제시했다. 주민들에게 장사하는 법과 생산기술을 가르쳤으며 자급자족의 능력을 기를 것을 강조했다.
안면도 남쪽 어딘가에 들어가서 박을 키워 바가지를 만들고 화염도 구워 한양에 가져가서 내다 팔아 빈민들을 돕는데 썼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옛날 서민들은 보통 쌀값의 반이었던 생필품인 소금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지함의 학풍과 사상은 개방성과 다양성을 특징으로 한다. 의(義)와 이(利)를 대립적인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백성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성인도 원칙을 버리고 권도(權道) 즉 임시변통책을 펼 수 있다고 밝혔다.
국부의 증대와 민생에 유용한 것이라면 어떤 산업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해양자원의 적극적인 개발과 국제무역까지 주창했다. 그의 혁신적인 사회경제 사상이 조선 후기 북학사상의 원류가 됨을 밝힌다.
이지함이 제시했던 부국과 해외통상론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한 학자는 18세기 후반의 북학파 학자 박제가와 19세기 실학자 이규경이었다. 이처럼 이지함의 존재는 17세기 후반 이후 태동한 학문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한 실학의 연원을 더 앞당길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준다고 박교수는 강조한다.
또 이지함과 교유관계를 맺은 인물들을 통해 주자성리학 중심으로만 파악해온 16세기 조선 사상계를 좀더 폭넓고 다양하게 바라본다. 16세기는 ‘사화의 시대’였지만 ‘처사의 시대’이기도 했다.
‘사화’의 여파로 은거의 삶을 채택한 처사형 학자들은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만큼 다양한 학문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이를 통해 16세기는 양명학이나 도교와 같은 사상전통이 널리 읽히면서 다양성과 개방성을 추구한 시대였다는 것이다.
이지함은 57세의 나이인 1573년 유일(遺逸)로 천거됐고 1574년 6품직을 제수 받아 포천 현감이 됐으나 이듬해 사직했다. 아산현감으로 있던 윤춘수(尹春壽)가 백성들에게 온갖 행패를 부려 원성이 높아지자 1578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산현감이 돼서는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관내 걸인의 수용과 노약자의 구호에 힘쓰는 등 민생문제의 해결에 큰 관심을 가졌다.
한편 포천시장 서장원은 이지함과 같은 57세의 나이에 '성추행 무마' 혐의로 교도소에서 징역 10개월을 살고 사직은커녕 업무에 복귀했다. 서 시장은 의정부 교도소 정문을 나서자마자 출소 소감으로서 "가서 다시 시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했다.
대법원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대한민국의 헌법이 보장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시장직에 복귀한 서 시장은 지난 일주일간 어디서 무엇을 했나 묻고 싶다. 이지함 선생처럼 민생문제의 해결에 힘썼나?
지금 ‘헬포천’이라는 시민들 사이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신조어 그대로 포천은 절망적이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을 더 견딜 수 없는 ‘지옥’으로 만드는 가장 근원적인 요인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로 ‘무죄추정의 원칙’ 때문이다.
서 시장은 사죄 한마디 없이 업무에 복귀해 시민들을 분노케 했다. 또한 각언론사 인터뷰와 기자회견을 통한 시민사과를 거절한 채 사퇴 요구가 거세지자 18일 일방적인 시장복귀 의사 입장표명에 대한 보도자료를 배포해 다시 한번 시민들을 분노케하고 있다.
그는 18일 “16만 시민여러분께 정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서 시장은 “지난 1월부터 장기간에 걸쳐 시정부재를 초래하게 되어 16만 시민여러분께 정말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전했다.
이어 “시장이 없는 가운데 시정을 이끌어 오신 김한섭 부시장을 비롯한 900여 공직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드린다”며 공판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 대해 “재판부의 공정하고 현명한 판결에 따를 예정이며, 아울러 시정부재를 최소화 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지함의 스승인 서경덕이 김안국에게 보낸 시를 보면, “장부(丈夫)라면 마땅히 백성의 더위를 씻어 주어야 할 것이니 응당 시원한 바람을 온 나라 안에 퍼뜨려야 할 걸세(丈夫要濯群生熱, 當把泠飆播帝鄕)”라고 했다. 입신양명의 목적은 백성의 더위를 시원하게 식혀줄 부채와 같은 일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 관점을 지녔기에 관직에 있는 사람은 탁월한 문장력이 있어야 하고, 자기 자신을 제대로 다스려 스스로 모범이 되어야 하고, 개인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발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지함의 지인인 남명 조식 선생은 조정에서 내린 벼슬을 받지 않겠다며 ‘을묘상소’란 상소문을 올려,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나라의 근본’이 이미 망했다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궁극적인 책임은 통치자에게 있다고 서슴없이 직언했다.
과연 포천은 어디로 갈 것인가? 지난 16일 새정치민주연합 시의원들은 포천시청 브링핑룸에서 서 시장은 “성추행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은 사람으로 범죄자나 다름없고 서장원 시장으로 인해 포천은 전국에서 가장 부끄럽고 창피스러운 도시가 되어 이제라도 시민 앞에 사과하고 물러나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런데 포천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인 서 시장과 새누리당 시의원들은 대체 어떤 현상 타개책을 갖고 있는지, 어떤 포천을 지향하는지 그 속내를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다.
다만 그들은 서 시장 집권의 욕망 속에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을 뿐이다. 김영우 국회의원 또한 “시정에 복귀한 이상 그동안의 시정 공백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향후 모든 시정이 차질 없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바라며 재판에 관련해서는 재판이 아직도 진행 중 이므로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것도 보좌관을 통해서 문자한통으로 ‘이 정도 의견’이라고 전했다.
16만 포천시민이 ‘국민의 알 권리’를 요구하며 ‘입장표명’을 묻는 사항에 대해 왜 ‘이 정도 의견’인지 그것도 달랑 ‘문자한통’을 통해서인지 꼭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설명의 생략 혹은 회피는 이 나라 지배자들의 뿌리 깊은 생리다. 예컨대, 그들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강조하지만,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리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사상과 표현과 결사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임을 외면한다.
그리하여 서장원 시장에 대해 새누리당은 그리고 그를 공천했던 김영우 국회의원은 어떻게 그가 시장직을 잘 수행해 나갈지 전혀 설명해주지도 않고 그냥 밀어붙이고 있다.
‘역사의 종말’이란 저서로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소비에트사회주의 붕괴 이후에 이 세계에 가능한 정치체제는 자유민주주의 말고는 없다는 논리를 편 유명한 보수파 사상가다.
하지만, 그가 근래의 저술 속에서 부쩍 강조하는 것이 ‘설명책임’이다. 그는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집권자의 국민에 대한 ‘설명책임’이 불가결하다고 역설한다.
그럼에도 지금 서장원 시장과 김영우 국회의원은 설명다운 설명은커녕 ‘열심히 일하겠다’와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로 일관하고 있다. 반드시 포천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의 의무를 저버리지 말기 바란다.
지금 몇몇 범시민단체가 시민들의 불만의 목소리를 조금이나마 표출하기 위해 시작한 ‘1인시위’ 도 좌절될 위기에 있다. 포천경찰서 정보과 소속의 경찰이 나와서 사진까지 찍어가며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한가해서 시청으로 나들이 나와 사진을 찍을 리 만무하다.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만한 ‘1인시위’도 못하게 한다면 포천의 민주주의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석탄발전소 건설 문제로 주민들이 어렵사리 진행시킨 자발적인 ‘1인시위’를 감시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대체 누가 누구의 눈치를 봐야하고 이 나라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다는 것인가?
결국 서 시장의 업무복귀는 포천의 민심을 배반하는 것이기에 거기에 어떠한 합당한 논거가 있을 수가 없다. 그 대신 들어서는 게 거짓말, 은폐, 모르쇠다. ‘시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그의 말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지난 일주일동안 시민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거짓말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상황이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시장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잘못할 수 있고, 그런 경우 깨끗이 사과하고 사퇴하면 된다.
지금처럼 거짓말을 반복한다면 재앙은 필연적이다. 거짓말이 일상화된 정치가 끝없이 계속되면 사람들은 아무것도 믿지 못하고, 결국 포천에는 ‘니힐리즘’만 만연하게 될 것이다. 그런 무서운 상황으로 포천은 빠르게 들어가고 있다.
현재의 고통과 절망을 견뎌내기 위해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다. 선거로 뽑혔음에도 불구하고 포천 최고 권력자의 자의적인 집권에 제동을 거는 장치가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는 작금의 현실이 통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