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말에 천자(天子)는 하늘에 제사 지내고 제후(諸侯)는 산천(山川)에 제사 지내고 사대부(士大夫)는 조상에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다.
그래서 중국의 황제는 천단(天壇)을 만들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우리대한제국도 서울에다 원구단을 짓고 고종 황제가 하늘에다 황제가 되었음을 고하는 제사를 지냈다.
그 이전에는 경기기전(京畿畿甸→서울 한양에서 2백리 안의 땅)에다 5악산(송악, 북악, 관악, 감악, 운악산)을 두고 황제가 아닌 때의 왕이나 왕비 등 왕족이나 장상(將相)이 국란을 당하거나 큰일이 나면 기원제(祈願祭)를 올렸다. 다시 말해서 가뭄이나 물난리, 돌림병, 왕가의 안녕을 비는 5악산에 제사를 지냈다.
내 고향 포천의 운악산도 그 예라 할 수 있다. 또 각 고을마다 국사봉이나 국사당이 있어 산신에게 고을의 안녕을 빌었다. 우리들의 고향 포천의 왕방산 국사봉도 포천 고을의 안녕을 비는 영험한 산이다.
지금도 왕방산 기슭 심곡리(기피울)에는 국사당을 모시고 국사봉에다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전해오고 있다. 매년 음력 3월 삼짓날과 음력 중량절(9월 9일)에 말을 이장과 원로 유지들이 뜻을 모아 산제사를 올린다.
수도 서울에는 북악산 기슭 국사당과 남산 국사당 수락산 제단 등 몇 곳에서 봄·가을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올리는데 수락산 산신제는 노원구청장이 초헌관으로 산신제에 참례한다.
왜놈들이 일제 강점기 일본 신도(新道)를 믿게 하고 고을마다 진자(신사→神祠)를 짓고 아침마다 참배케 했다.
또 우리 전통 종교와 도교를 말살하고 국사봉에 제사지내는 일을 없앴다. 우리의 고향 왕방산 국사봉 기슭 꽃봉수에는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 있고 문례현(問禮峴→물어고개)에는 6·25전까지도 국사봉을 지키는 성황당(城隍堂)이 있었는데 흰 수염을 한 산신이 호랑이를 안고 있는 산시도(山神圖)가 있었으며 입구에는 오방색(五方色)의 천이 늘어져 있었다.
내 고향 포천에는 축석령을 비롯한 마을 고갯마루나 거목(巨木)에는 성황당이 있었는데 국사봉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포천 현감도 왕방산 국사봉에다 춘·추로 제사를 드렸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종교는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고 가르침을 받는데서 비롯되며 내세관(來世觀)이 신자(信者)들이 모시는 신(神)을 숭배(崇拜)하는 근본(根本)이 된다.
도교(道敎)나 전통 신앙도 종교로서의 실천신앙(實踐信仰)의 종교가 아닌가? 나와 이웃을 위해 안녕을 비는 전통 신앙도 종교로서 가치를 지니고 오늘도 국사봉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