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뭐하는 곳인가?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다. 진리(眞理)를 밝히는 곳이다. 그래서 대학은 진리를 탐구(探究)하는 곳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진리탐구는 왜 하는가? 진리라는 잣대가 기준(基準)이 되기 때문이다.
진리라는 잣대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라는 잣대를 가지고 자연을 관찰(觀察)하고 세상을 관조(觀照)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말한다. 취직하기 위해서 혹은 좋은 곳에 시집가기 위해서 대학에 간다고 말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밥벌이만을 위해서 대학에 간다면 너무나 서글픈 일이다. 밥벌이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참된 교육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은 지식(知識)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은 지식과 아울러 인품(人品)을 전달하는 것이다. 인품과 아울러 지혜(智慧)도 전달하는 것이다. 인품과 지혜가 전달되어야 그것이 참된 교육이다. 지식만을 전달한다면 그것은 교육이 아니다.
사제간(師弟間)이 아니다. 스승도 제자도 아니다. 계산을 앞세우고 타산을 앞세운다면 그건 아니다. 무엇이 이로운가를 가르치기 전에 어떤 것이 바른 것인가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학생다워야 한다. 학생이 학생답지 못하면 무엇에 쓰겠는가? 사람이 된 연후에 지식도 쌓고 기술(技術)도 연마(鍊磨)해야 한다.
사람답지 못하고 학생답지 못한 사람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그런 사람은 나쁜 길로 빠지는 수밖에 없다. 나쁜 짓을 하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가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르게 사는 것이 얼마나 복(福)된 삶인가를 깨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자신의 내면을 한번 들여다보라. 나의 거울에 비친 내가 있고 남의 거울에 비친 내가 있으며 내 거울과 남의 거울에도 비치지 않은 내가 있다. 자신의 거울에 비친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아라. 무어라고 속삭이는가?
겸허(謙虛)한 마음으로 바라보라. 어느 것이 진짜 자신의 모습인가? 자신의 거울에 비친 모습인가? 남의 거울에 비친 모습인가? 아니면 자신의 거울에도 남의 거울에도 비치지 않은 그 어떤 모습인가? 보이지 않는 그 모습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진짜 모습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을 수 있는가? 가만히 눈을 감고 마음을 비워 보라. 자신의 진짜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진리는 먼데 있는 것이 아니다. 먼데서 진리를 찾으려 하지 말고 가까운데서 찾아라. 남의 모습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자신의 모습에서 찾아라.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良心)의 소리에 귀 기울여라.
양심의 소리가 바로 진리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양심의 잣대가 바로 진리의 잣대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든지 자신을 속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양심이라는 잣대가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이치 자연의 섭리(攝理)를 벗어나 존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이 진리이다.
때문에 진리를 찾는 것이고 양심(良心)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양심을 거스르고 마음 편히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利)를 만나면 의(義)를 생각하라는 말은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 남의 가슴에 못을 박고 마음 편히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남에게 못할 짓을 하고 가위눌리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참 모습을 보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 진리에 가까워지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 어떻게 마음을 비우는가? 먼저 분심(忿心)을 버려라. 남을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탓하는 마음을 버려라. 어떠한 경우에도 분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 잡념을 버려라. 그리고 욕심을 버리고 의식(意識)을 버려라. 의식을 버리는 순간 각(覺)이 열리고 진리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남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도 들여다보라. 어떤 평가(評價)를 받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