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간으로 14일 새벽 파리를 중심으로 공연장과 식당, 축구장 등 프랑스 전역에서 총격과 폭발, 인질극 등 연쇄 테러가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해 최소 120명이 숨지고 약 100여명이 인질로 잡혀 있다고 AFP통신 등 다수의 외신이 보도했다.
‘테러’란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불법적인 폭력이나 협박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통상적으로는,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을 같이하는 집단이나 조직이 주체가 되어 행해진다. 테러에는 경제적인 이익이나 종교적인 신념이 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개인에 의한 영리목적의 범죄나, 국가가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행하는 행동 등은 통상 ‘테러’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기관이 비밀리에 테러행위를 행하거나 테러조직을 지원하는 경우는 존재한다.
테러리즘은 어원 (Terror:공포)대로, 폭력에 의한 공포를 정치적인 목적달성을 위해 이용하기 때문에, 대중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는 것이 그 목적이다. 폭발물의 사용, 요인납치, 암살, 전철과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시설을 공격해 무차별적인 살상을 하는 경우가 전형적인 수단이다.
핵, 생물, 화학, 방사능 등 대량파괴무기의 사용이나 상징적인 건물에의 공격은 그 사회에 패닉상태를 유발시키는데 효과적이며 9.11 동시테러사건 등의 전례가 있다.
테러를 실행하는 측은 공격장소와 타이밍에 관해서 주도권을 갖고 있으며, 종종 국가레벨의 조직적 지원을 받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공격의 우위를 점한다.
그러한 테러행위 및 테러조직, 테러리스트는 통상 치안을 맡고 있는 경찰이나 국가 간의 전쟁을 전제로 한 정규군도 전부 대처할 수는 없다. 그 때문에 제2차세계대전후, 각국은 대테러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전임부대나 체제, 장비, 전술 등을 길러왔다. 그 과정에서 때때로 국가기관측이 암살 등 테러리스트 측과 같은 수법을 동원한 경우도 있다.
프랑스 테러의 배후세력으로 이슬람 세력이 지목되고 있지만, 프랑스 사회에서 이슬람 세력은 사회적 약자다. 테러는 물론 나쁘지만 프랑스가 말하는 "똘레랑스"는 강자의 논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테러는 약자들의 전쟁이지만 늘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된다. 이런 말들은 이미 약자들의 전쟁 자체를 나쁜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전쟁은 강자들의 테러다. 테러보다 더 나쁜 것이 전쟁이다. 그런데 우리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모순된 조어를 받아들이고 있다.
게다가 많은 경우 일방적 폭력이거나 비대칭적 전쟁임에도 마치 대등한 쌍방의 싸움인 양 호도된다. 강자의 논리가 똘레랑스의 외피를 쓰고 있는 것이다. 차이와 다양성은 공존에 그칠게 아니라 변화의 시작이어야 한다.
지역감정을 깨고 전남 순천·곡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화제를 모은 새누리당 이정현 국회의원은 선거 공약으로 고향에 ‘예산폭탄’을 투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현행 역사교과서는 적화통일을 준비하는 교재”라는 말을 해서 분노한 주민들이 소환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편 성추행 혐의로 1심에서 실형 선고를 받고 징역 10개월을 다 채워 의정부교도소 밖으로 나오게 된 서장원 포천시장은 기다리던 취재진이 '시장직은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시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했다. 서 시장은 재판 과정에서 성추행 혐의를 부인했고, '명예 회복'을 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1심 결과대로 형이 확정되면 서 시장은 시장직을 잃는다. 그러나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이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그가 16일부터 출근해 시장 직무를 보더라도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당장 시장직에서 사퇴하고 시민들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지역단체들은 서 시장이 사퇴하지 않는다면 주민소환을 위한 서명운동과 시위를 벌이겠다며 분노하고 있다.
필리프 사시에는 그의 저서 ‘왜 똘레랑스인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똘레랑스한다는 것, 그것은 견디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지워진 부담을 견디는 것처럼 말입니다. 똘레랑스한다는 것은, 내가 동의하지 않는 생각을 용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동의하지 않는 상대방의 생각이나 의견을 바꿀 수도 있지만 그대로 용인하는 것을 말합니다.”라고.
우리는 생각이나 이념이 달라도 상대방을 인정해야한다. 이것은 개인 사이에 국한된 문제만이 아니다. 국가나 종교에도 해당한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동시다발 테러사건에서 보듯, 강자의 논리가 아닌 약자의 논리에 서야한다. 성추행 혐의를 부인하며, '명예 회복'을 하겠다는 서장원 시장의 생각도 똘레랑스해야한다. 이것은 물론 서 시장이 '약자'라는 뜻이 아니라 그의 임기가 아직도 31개월 남아있기 때문이다.
오늘 프랑스 테러사건을 지켜보면서, 갑자기 예전에 봤던 ‘스타워즈’란 영화가 떠오른다. “공포는 너를 어둠의 세계로 인도한다. 공포는 분노를 낳고, 분노는 증오를 낳고, 증오는 고통을 낳는다.”는 마스터 요다가 주인공인 아나킨의 어두운 미래를 예견하고 한 말이 생각난다. 포천의 어두운 미래를 상상하고 싶지는 않다.
테러는 나쁘다. 전쟁은 더 나쁘다. 하지만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시민들에게는 '투표'라는 우리만의 싸움 방식이 있다. 왜냐하면, 투표는 분노할 필요도, 증오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