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결과 100년이 안 되는 짧은 사이에 일어난 급격한 변천과정은 일찍이 미술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었습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백가쟁명(百家爭鳴)과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비견될 만큼 미술의 혁신을 만들어냅니다.
이제 미술은 더 이상 우리 눈을 가리고 있던 현실적 세계의 불안정성을 복제하는 것에 만족하는 것을 멈추고 급진적이면서 전방위적으로 새로운 미적 가능성을 탐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비단 미술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금세기에 있어서의 그와 같은 가속화(加速化)된 변천의 양상은 모든 정신 및 과학 분야에서도 다 같이 드러나고 있으며, 특히 20세기에 일어난 두 차례 세계대전, 산업화와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 그리고 테크놀러지의 눈부신 발전은 우리의 생활환경과 그 방식을 급격하게 변모 시켰습니다. 현대미술은 이러한 전반적인 시대적 상황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시도는 대단히 급격한 변화인 동시에 기존 미술에 대한 도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진기의 발명에서 볼 수 있듯이 미술의 역할이 사실을 재현하는 것이 전부라면 사진기의 등장과 함께 미술이란 존재는 인류 역사에서 사라져 갔을 겁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테크놀러지의 발달이 미술에게 새로운 자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사물의 재현이란 미술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고 미술이 가지고 있는 색채, 선, 질감 등 순수 조형성을 주목하고 새로운 시각적 표현을 제안하는 실험을 거듭합니다. 미술은 이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예술이 아닙니다. 추한 것도 미술이 될 수 있고 영화도 미술이 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렇듯 모더니즘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미학과 결별하고 모더니즘 사상에 입각한 실험정신을 추구하며 전통적 예술의 특징인 묘사에서 벗어나 추상을 지향합니다. 모더니스트들은 위험을 무릅쓰는 모험가답게 전통을 거부함으로서 편안함을 느꼈을 정도로 기존의 모든 질서와 권위를 부정하고 거부하였습니다. 모든 모더니스트가 군말없이 동의했던 유일한 신념은 다음과 같습니다.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이 익숙한 것보다 낫고, 드문 것이 평범한 것보다, 실험적인 것이 상투적인 것보다 낫다.”
현대미술의 등장에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부르조아 시민혁명으로 인해 바뀌게 된 유럽의 사회구조입니다. 부르주아 자본주의 사회의 등장은 예술가들에게 모순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술가들은 더 이상 봉건 왕조나 귀족에게 예속되어 그들을 찬미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그들의 몰락으로 인해 경제적인 지원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술가 역시 자본주의 시장논리에 따라 스스로 존재해야 했습니다.
이들이 스스로 존재할 수 있었던 조건(사회·문화적 환경)은 프랑스 혁명 이후 등장한 “비교적 자유로운 국가와 사회”, 그리고 “기꺼이 모더니즘을 지지하는 든든하고 영향력 있는 후원자와 고객들(중산계급 교양층)”, 그 토대가 된 18세기 말 산업혁명과 경제적 부의 축적이었다. 상품으로서의 문화 소비자 교육가로서의 문화 중개인, 미술관 운영자들, 부국 미국의 돈 많은 미술품 구입자들의 등장이 그 토대 위에서 이뤄졌습니다. 자본주의 신흥 부르주아들은, 모더니스트들 입장에선 용납할 수 없는 주적이면서 후원자가 되는 모순관계였습니다. 부르주아 주류에 대한 저항·반역이 성공의 조건이기도 했던 모더니즘이 바로 그 성공 때문에 주류에 포섭 당함으로써 실패하게 되는 것도 역설적입니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현대미술은 유럽인들이 만든 서구미술이지 그러한 역사와 과정을 거치지 않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과 현대미술이 과거의 미술과 전통을 부정하는 운동이니 사실주의 기법의 미술들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입니다.
두 질문 모두 얼핏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탐구하는 인간 본성에 비추어 본다면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은 성급하고 근시안적 판단일 수 있습니다. 모더니즘은 근대화라는 세계 역사의 물결에서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었고 그것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인식과 행위의 주체가 누구인가의 문제이지 모더니즘 자체의 문제는 아닙니다. 당연히 서구문명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야했던 초기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부작용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문을 걸어 잠그고 홀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 세계와의 교류는 필연적일 수 밖에 없고 그러한 과정에서 겪었던 아픔과 실수를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대미술이 혁신을 버리고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면 언제든지 흘러간 미술이 될 뿐입니다. 모더니즘이 배격했던 미술은 그 기법이나 형식이 아닌 타성에 젖은 표현과 정신이었던 것입니다. 전통에 대한 사랑의 채찍질이라고 보면 너무나 관대한 표현일까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