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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 이야기] 포천의 고대유적지(古代遺蹟地)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5년 11월 02일
 
↑↑ 현운 김창종 수필가
ⓒ (주)포천신문사 
포천땅은 4천년 전부터 살아 온 고대 원시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왕방산 ‘갓뫼봉’이나 창수면 ‘다듬바리’ 등 옛 항구의 배를 매어 두었던 유적이 이를 증명하고 있으며 창수면 추동리 남방식 고인돌 또 일동면 수입리 북방식 고인돌, 금현리 북방식 고인돌, 자작리 북방식 고인돌 등 고대 원시인 들이 사는 곳이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우리들의 고향 포천은 수도 한양(서울)에서 관북지방(함경도)으로 통하는 관문이었던 관계로 전쟁의 참화와 인구의 이동이 빈번하여(집 짓기, 다리 놓기 등으로 사용) 고인돌이나 고대 유적이 모두 훼손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고학자들은 일동면에서 포천땅을 지나 남양주 성남지역까지가 고대 원시인들의 혈거지(穴居地) 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예로 포천 종고 앞 냇가에서 발견된 마제석부(갈아서 만든 돌도끼)도 증명되는 바이기도 하다.

한탄강가에서 살던 고대인들이 타제석기(깨뜨려 만든 돌의 연모)를 만들어 포천땅까지 올라와 살다가 성남시에 걸쳐 옮겨 살았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강화도의 고인돌 군(群)이나 고창 고인돌 군은 UNESCO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고 관광지로 각광을 받으며,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강화도나 고창 땅보다 앞선 포천땅은 유명무실(有名無實)하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개성 송악산이나 평안도 고대 유적지는 북녘땅이니 어쩔 수 없어 크낙새나 고대 유적은 관심 밖이지만 포천은 고대 유적이나 크낙새 서식지 연구 고성(古城) 연구는 가능하지 않을까?남양주시는 서울 노원구 고구려 유적을 갖다가 세계적인 연구에 몰두하고 있으며, 포천 수목원의 크낙새도 남양주의 시조(翅鳥)가 된지 오래다.

언제인가 KBS에 오랫동안 근무한 포천출신 영상기사가 광릉수목원 크낙새를 직접 촬영했다고 하여 크낙새 샘터 연구보전(保傳)에 자료 협조를 요청하였으나 수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꿩궈먹은 소식이다. 기대를 하지 않았으면서도 실낱같은 크낙새 소식을 기다렸던 내가 불쌍하고 처량해 보이는 오늘이다.

왜놈들이 일제 강점기 한반도를 점령했을 당시 연구한 자료를 찾아 포천 연구 자료로 삼았으면 하는데 필자의 능력에 한계를 느낀다.

다행이 향토대학(鄕土大學)화 된 대진 대학교나 경복대학교 석학들에게 기대를 건다면 내 욕심일까?

얼마 전, 금현리 고인돌 유적지를 찾으나 주위가 깨끗이 정돈 보존된 것을 보고 놀랍고 고맙게 생각했던 일이 생각난다. 포천땅에 무덤이 있는 선비들의 연구로 포천을 빛낸 인물로 추앙되고 재조명하는 글을 읽어 보면 내가 무식한 탓인지 웃음이 난다.

‘무덤 속에서 내 고향 포천을 빛내?’ 그런 예산으로 고대 유적연구에 투입했으면 하는 내 바람은 잘못일까?

현운 김창종 / 수필가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5년 11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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