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북면 가채리에 가면 함종밤 나무 한그루가 최종규씨댁 정원에 서있다. 독립운동가 최면식 선생이 함경도에서 독립운동을 하실 때 주린 배를 날밤으로 채우시고 남은 밤 한 톨을 가져다 고향마당 가에 심은 것이 자라서 함경도 밤의 고소한 맛을 자랑하며 80년을 우뚝 서 있다. 그 곁에 서 있던 소나무 한 그루는 독립기념관 곁에 옮겨 심어져 오늘도 면암과 함께 기념 식수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가채리 711번지에서 면암의 손자로 태어난 최면식 선생은 면암의 독립정신을 이어 받아 만주 독립군 사령관 김좌진 장군과 의형제를 맺고 의열단에 가입, 독립운동 자금 모집책, 독립군 의무관(군의관)으로 한·만 국경을 넘나들며 조국 광복 운동에 헌신하시다가 왜놈 경찰에 체포되여 감옥살이를 하셨다.
잠시, 가석방의 기회를 얻어 고향 가채리에 제사를 지내러 오기도 하고 제사를 지낸 날 밤으로 축지법을 써서 공주 독립운동 거점으로 가셨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조상님의 제삿날은 잊지 않고 고향 가채리로 와 제사를 꼭 지냈으며 마을의 병든 이웃을 치료하고 축지법을 써서 공주로 가셨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독립운동 군자금이 부족하다는 김좌진 장군의 말씀을 듣고 문전옥답(門前沃畓) 천 오백평을 찰아 독립군 자금으로 헌납했으나 가족들의 생활은 가난하기 그지없었다. 공주감옥의 영오의 몸이 되어 온갖 고문을 다 받고 피 묻은 옷을 내 놓으면 가족들은 감옥면회를 가서 피묻은 옷을 갖다 세탁하여 다시 보냈다는 얘기는 오늘 날 우리들의 가슴을 찢어지게한다.
독립의 의지를 굽히지않자 왜놈 총독은 신당동 한의원을 개설해주고 독립운동을 그만두면 포천군수나 경기도지사도 시켜줄테니 전향하라고 하였으나 끝내 굽히지 않고 신당동 한의원에서 포천 출신 젊은이들을 불러 올려 독립운동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는 얘기를 들은 일이 있었다.
어룡리 오영우옹, 김곡리 김장렬옹, 신북면 허용옹동이 증언하고 있다. 1944년 그토록 기다리던 조국 광복의 날을 1년 앞두고 감옥에서 고문 끝에 얻은 병으로 별세하셔서 가채리 711번지에 잠들고 계시다.
포천의 진짜 독립군이자 독립운동가라는 소리를 포천의 젊은이들은 입버릇처럼 했다는 전설을 전한다. 독립군 군자금 모금책, 독립군 군의관으로서의 뜻 깊은 행적은 가채입구 비문에 상세히 적혀 있어 우리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후ᅟᅩᆫ으로는 손자 최종규옹을 비롯한 유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