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는 1941년생이다. 작가의 작업을 이야기할 때, 그의 연령을 문제 삼는 것만큼 부질없는 일이 또 있을까마는 그의 작업이 한국의 근현대미술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그의 출생년도는 꽤나 중요하다. 더불어 출생지도 그의 작업이 개입하려는 지점에 대해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출생년도와 출생지를 예술적 원리의 원천으로 삼는 것은 개인적 자질을 최우선의 가치로 취급하는 근대적 미학의 관점에서는 별로 유용성이 없는 태도겠지만, ‘창조적 원천’을 다만 개인적인 관점에서만 숙고하는 것은 도리어 그의 작업이 가진 성격에서 보면 이율배반적이라는 차원에서 그런 입장에서 바라보도로 만들지 않는다.
가령, 그의 초기 작업이 주목했던 우연이라는 시간성이란, 창조적 작품의 구성에는 작가의 자의식적인 노력만이 아니라, 그는 도저히 필연적으로 조율할 수 없는 ‘우연’의 시간성이 반드시 내재적으로 주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드러낸 바 있다.
‘제작한다’ 혹은 ‘만든다’는 인공적 노력이 단순히 인공적인 수고로움에만 기대어야 하는 게 아니라, 우연이라는 (오히려 필연적이라고 말해야 할) 시간에 기대지 않을 때, 작업은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그의 작업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미술이라는 내적 차원에서만 아니라, 그가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거대한 역사적 진전과 그 역사를 또 가능하게 했던 자연의 차원을 검토해야만 이해의 입구를 마련하게 된다.
그러니까, 그가 1941년생이고 경기도 포천 출생이라는 사실은 그의 작업에 깃든 내재적 우연성의 요소라는 것이고 이에 대한 일정한 좌표가 제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는 이른 바 ‘대동아 전쟁’의 시작과 함께 태어나 식민지라는 조건이 무의식적으로만 경험되었다.
아직 의식의 영역에 또렷하게 주어지지 않은 경험으로서 식민지적 태생이란 무엇을 의미할 것인가? 한국의 탁월한 미술사적 성과를 남긴 작가들의 연배들이 이 시기를 전후로 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미술에 대한 이들의 시각이란 무엇인가는 검토되어야 할 지점일 터이다. 해방 역시 이들에게는 일종의 무의식적 경험일 것이다.
이들의 유년 체험에서 압도적인 것은 한국전쟁의 경험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의식적으로 주어졌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경험보다는 자연적 삶에 대한 치명적인 파괴와 거대한 기계의 경험이 지배적이었을 것이다.
자연적인 리듬이 도시화에 완전히 잠식되었다고 보긴 당대의 삶의 조건에서 전쟁이라는 기술, 기계적인 무기체계는 자연과 그를 통해 이룬 삶의 가치를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부정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941년생으로 경기도 포천으로 38도 이북에 위치했던 지역이 전쟁을 통해 다시 이남이 되어야 했던 경험을 가진 김광우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물론 그것은 절대적인 경험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가 고등학교 진학 전까지 포천을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여전히 그의 경험이 문명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이 갈등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상황을 온 몸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전쟁이 단순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나 민족상잔의 경험이라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삶의 근본적인 조건으로서 양립할 수 없는 대립이 그에게 예술의 가능성으로 제공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극단적 두 차원의 대립/갈등에 예술적 실천이 개입함으로써, 그는 양립 불가능한 두 세계의 화해를 예술적으로 모색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개입은 그가 본격적인 작업을 하면서 드러내게 된 그가 일군 예술적 텃밭이 된다. 이 텃밭에 파종되는 것이 단일작물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달리 말해, 이 예술적 평면 위에 심어지는 것은 서로 결합할 수 없어 보이는 오브제들이고 서로 다른 것들의 결속을 통해서만 생장할 수 있다. 이를 더 분별해 볼 필요가 있다. 서로 다른 오브제의 결합은 이제 미술사에서 흔한 것이고 예술의 규칙 가운데 하나로 이미 잘 알려진 것이기도 하다.
흔히 이를 ‘낯설게 하기’나 ‘데뻬이즈망’(절연기법)과 같은 표현을 통해 설명하려 했다. 문제는 이런 예술적 형식들이 단순히 예술 내재적인 층위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이러한 개념들이 예술 원리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으로 주목된 시기는 혁명이나 전쟁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예술을 예술이게 하는 원리가 어쩌면 바로 혁명과 전쟁일 수도 있다. <이어서 계속>